화려한 무대 뒤에 숨은 탄소의 그림자
우리는 축제를 말할 때 종종 그 찰나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휘황찬란한 조명, 밤을 밝히는 무대,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공연과 퍼레이드. 축제의 공간은 잠시 동안 현실을 잊게 만드는 비일상의 감각을 제공하고, 그런 찰나의 경험은 때로 한 도시나 지역이 가진 문화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가? 축제장에 설치된 대형 LED 조명, 공연 음향 장비, 냉방과 발전기, 각종 이동형 시설은 모두 ‘전기’라는 보이지 않는 자원을 전제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원이 대부분 화석연료 기반의 전력일 때, 우리는 무심코 축제를 통해 탄소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든 지금, 더 이상 축제를 단지 소비의 공간으로만 설계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축제의 기획자는 이제 ‘에너지를 얼마나 쓰는가’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는가’까지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 사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지만, 그 사용 방식은 재설계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묻기 시작해야 한다. 지역축제는 에너지 전환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가? 재생에너지 기반 축제는 가능한가? 화려함을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구조는 설계될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지역축제의 에너지 구조를 점검하고,
기존 축제 운영에서 전력 소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어떤 방식으로 기획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단순히 기술적 대안만이 아니라, 기후 감수성과 문화 설계의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축제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제안한다.
축제는 ‘전기 위에 떠 있는 문화’다 — 그만큼 구조적 책임도 크다
많은 축제 기획자는 예산과 공간, 동선, 콘텐츠 구성을 고민하지만, 실제로 전력 설계를 축제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축제는 전적으로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무대 조명, 음향 시스템, 냉장고와 가열기, 전광판, 부스 안의 조리기구, 냉방기, 휴대폰 충전소, 비상 조명까지. 심지어 안전 시스템과 방송 송출도 전력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소규모 마을축제조차도 2~3일 동안 평균적으로 3,000kWh 이상의 전력을 소모하며, 대형 축제는 10,000kWh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전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축제 현장이 이런 전력을 화석연료 기반의 외부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야외행사는 전기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디젤 발전기를 사용하며, 이는 매연, 소음, CO₂ 배출을 동반한다. 한국의 여름 대표 해양 축제 중 하나인 B 지역 축제는 2023년 기준, 디젤 발전기 12대를 가동해 하루에 약 2,500L의 연료를 사용했고, 이는 하루 약 6.5톤의 CO₂ 배출로 이어졌다. 단 3일 축제를 위해 20톤에 가까운 탄소를 배출한 셈이다.
이 수치는 단지 기후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대기오염, 소음 민원, 화재 위험 등 다방면에서의 리스크가 발생하며, 지역주민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탄소중립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지방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충돌한다. 기후위기 대응이 행정의 핵심 과제가 된 지금, 축제가 계속해서 탄소 배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정책적, 윤리적, 실무적으로도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에너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축제는 기후위기의 가속 요인이 될 뿐이다.
재생에너지 기반 축제는 ‘기술이 아닌 설계의 문제’다
많은 기획자들은 “재생에너지는 아직 비싸고 불안정하다”, “태양광으로 대형 축제를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현재 태양광, ESS(에너지 저장장치), 휴대용 발전기, 바이오가스, 풍력 등 다양한 형태의 중소형 재생에너지 기술이 실현 가능한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이미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재생에너지 기반 축제가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태양광 무대’다. 예를 들어 서울 마포구는 2022년 ‘제로웨이스트 축제’의 일부 무대를 태양광 패널과 ESS로 운영했다. 축제 2주 전부터 현장에 설치된 이동식 태양광 발전 설비가 전력을 축적해 무대 음향과 조명을 구동했고, 그 결과 축제 3일간 탄소배출량을 약 70% 감축할 수 있었다. 부산의 한 해양축제에서는 이동형 ESS를 트럭에 장착하여, 매년 사용하던 디젤 발전기를 대체했고, 현장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조용하고 깨끗하며, 친환경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은 이미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기획자와 행정의 인식과 설계 방식이다. 기존 축제는 편의성과 관성에 의해 디젤 발전기, 임대 조명, 고출력 음향 시스템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에너지 소비량을 예측하고, 축제 전력 사용을 가시화하며, 어떤 부분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이 가능한지를 분석해야 한다. 전력의 양을 줄이는 디자인, 예를 들어 낮 공연 중심 구성, 자연광 활용 무대, 무대 수를 줄인 분산형 공간 설계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결국 재생에너지 기반 축제는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감각과 철학으로 설계하는가?”의 문제다.
기획의 초기 프레임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기술은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
지역의 에너지를 지역에서 돌리는 구조: 축제와 분산형 전력의 연결
지역축제가 재생에너지로 운영된다는 것은 단지 전기료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 에너지 순환 생태계를 실험하는 플랫폼이 된다는 의미다. 이는 지역 에너지 자립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지방 소도시나 농산촌 지역은 수도권보다 전력 인프라가 약하고,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축제가 재생에너지 전환을 실험하고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매개 공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마을축제에서 주민 태양광 협동조합과 연계해 무대 조명을 주민 공동 소유 패널에서 생산한 전력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있다. 축제 전력 사용량을 측정해 그 수치를 축제장에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관람객이 참여한 자전거 발전 이벤트나 태양광 체험존에서 만든 전력이 실제 축제 운영에 쓰인다면, 그것은 단지 퍼포먼스가 아닌 진짜 ‘재생에너지 시민교육’과 ‘실천의 장’이 된다.
또한, 지자체 차원에서는 축제용 이동식 ESS를 자체 보유하거나,
태양광 키오스크, 친환경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업체들과 협업해
축제를 통해 지역의 에너지전환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도 가능하다.
즉, 축제는 소비의 장소가 아니라 ‘에너지를 재구성하고 분산시키는 지역 순환의 문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축제를 다시 묻는다면, 에너지부터 다시 짜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축제는
더 크고, 더 밝고, 더 시끄러운 축제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축제는 더 책임 있고, 더 조용하고,
더 오래 지속가능한 축제다.
축제는 잠깐의 문화이지만, 그 문화가 사용하는 자원은
한 도시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크다.
우리가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어떤 에너지를 쓰고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축제는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기획자 한 사람의 감각을 넘어,
행정과 기술, 지역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축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바로 에너지 설계다.
에너지를 바꾸는 순간, 축제는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단지 전기 코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후위기 시대, 축제는 어떻게 교육과 연결되어야 할까?” (0) | 2025.07.10 |
---|---|
생태축제, 단지 친환경 콘셉트인가? (0) | 2025.07.09 |
“축제 기획에 기상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0) | 2025.07.08 |
축제 시즌은 유효한가? 기후변화에 따른 일정 재구성 전략” (0) | 2025.07.07 |
“기후위기 시대, 축제 장소 선정 기준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0) | 2025.07.06 |
기후위기 대응 축제 기획자를 위한 10가지 체크리스트 (0) | 202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