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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기후위기 대응 축제 기획자를 위한 10가지 체크리스트

기획력보다 중요한 건, ‘기후 감수성’이다

기획자는 축제를 만든다. 어떤 주제를 고르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을지 결정한다. 기획자는 동시에 문제 해결자이며 예산 관리자이고, 때로는 지역 주민과 행정 사이의 조율자 역할도 수행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기획자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는 기후위기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변화하는 자연과 함께 축제를 설계할 줄 아는 감각과 책임의 소유자여야 한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보도자료 속의 단어가 아니다. 지역 곳곳에서 매해 반복되는 폭우, 폭염, 태풍, 산불은 축제 현장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때로는 준비가 끝난 무대를 철거해야 하고, 때로는 수만 명이 몰린 행사장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열사병 응급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해마다 더 자주, 더 극단적으로 그런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예년처럼 하자’는 기획은 위험한 선택이며, 기후위기 대응이 없는 축제는 더 이상 ‘진짜 축제’일 수 없다.

이제는 ‘기획력이 좋다’는 말보다 ‘기후 감수성이 있다’는 평가가 기획자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이에 따라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 대응형 축제기획자가 반드시 확인하고 설계해야 할 10가지 핵심 체크리스트를 정리했다. 각각의 항목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실무 전략이자, 미래형 축제를 위한 생존 지침이다.

 

 

기후위기 대응 축제 기획자를 위한 10가지 체크리스트

기획 초기부터 ‘기후위기 리스크 맵’을 설계했는가?

기획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제 '무슨 축제를 열 것인가'가 아니라 ‘이 지역에서 어떤 기후위기 리스크가 존재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기획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전체 설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출발점이다. 폭염은 어느 달부터 심해지는가? 태풍은 어느 시기에, 어떤 경로로 자주 발생하는가? 이 지역은 침수 지역인가, 열섬 지역인가? 과거 5년간 기상재난 발생 데이터와 지역 기후지도를 함께 분석하면 리스크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 리스크 맵은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라, 행사 일정, 장소, 콘텐츠, 예산 구조, 보험, 응급 대응 인력 구성 전반에 영향을 주는 핵심 자료로 활용되어야 한다. 예컨대 침수 위험이 높은 하천변 축제는 부스 설치 위치를 고지대 쪽으로 조정하고, 태풍 빈도가 높은 지역은 ‘모듈형 무대’를 기획하거나 설치 일정을 촘촘히 조절해야 한다. 이 작업 없이 기획을 시작한다면, 축제는 기후위기의 타이밍에 맞춰 무너질 수밖에 없다.

 행사 일정은 ‘기후 데이터 기반’으로 설계되었는가?

기획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작년과 똑같이 하면 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이 사고방식은 무모한 도박에 가깝다. 봄꽃 개화시기, 가을 단풍 절정기, 겨울의 결빙 시점은 해마다 1~2주씩 앞당겨지거나 늦춰지고 있으며, 기후변화는 그 패턴조차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 일정은 더 이상 ‘전통적인 날짜’에 묶여 있을 수 없고, 자연현상의 실측 데이터와 기상청의 계절 예보를 기반으로 유연하게 조정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예를 들어, 개화기 축제의 경우에는 ‘예상 개화 시점 + 3일’ 같은 방식으로 유동일정을 기획하고, 부스 설치나 납품 계약 등도 가변 일정 조건부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계약서에 유연조항을 포함시키는 법무적 이해도 필요하고, 일정 변경에 따른 시민 안내 시스템도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고정된 날짜보다 유동적인 자연에 기획을 맞추는 것, 그것이 기후시대의 새로운 기획 언어다.

장소는 ‘온열·침수 리스크’를 고려해 선정되었는가?

많은 축제가 도시 한복판, 주차장, 광장처럼 넓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곳을 우선시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후위기 시대에 치명적인 문제들이 숨어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열을 흡수해 바닥 온도를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비가 오면 배수가 잘 되지 않아 행사장을 침수시킨다. 도시 중심부는 대부분 열섬현상이 집중되며, 피난처 확보가 어렵고, 대중교통은 많지만 도보 이동이 불편하다.

이제는 장소 선정에서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항목이 열 회피 가능성, 음영 공간 비율, 빗물 흐름 경로, 대피소 위치, 응급차 진입 가능성이어야 한다. 그늘막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애초에 그늘이 많은 자연 지형, 바람이 잘 통하는 산책로, 숲 인접지를 고르는 것이 더 지속가능한 전략이다. 기획자의 장소 선택은 곧 ‘사람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동수단 구조는 ‘자가용 중심’이 아닌가?

축제를 위한 이동은 의외로 전체 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차량을 타고 20km 이동한 1명이 배출하는 탄소는 부스 1개에서 하루 동안 전기 소비로 나오는 탄소보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축제는 자가용 이동을 전제로 장소를 설계하고, 주차장을 확장하며, 대중교통 안내에는 소홀하다.

기획자는 행사장 접근성 판단 기준을 ‘차량 진입이 쉬운가’에서 ‘대중교통으로 얼마나 쉽게 오갈 수 있는가’로 전환해야 한다. 지하철 역세권, 마을버스 순환 코스, 셔틀버스 운영, 자전거 접근성 확보 등이 체크리스트에 포함되어야 하며, ‘자가용 없이 축제를 오면 리워드를 제공하는 제도’ 같은 문화적 유인 장치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이제 이동수단은 기획의 일부이자, 탄소 감축의 실천이 될 수 있다.

 재난 대응 시나리오가 있는가?

태풍, 폭우, 강풍, 낙뢰, 폭염. 어떤 기후재난도 이제 축제 현장에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건 '당황하지 않는 설계'다. 재난 발생 시 관람객을 어떻게 대피시킬 것인지, 그 동선과 방송, 인력 배치, 안내판, 구조소 위치는 사전에 계획되어 있는가? 축제 규모가 크고 관람객이 많을수록 대피 리스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단 3분의 대응 실패가 집단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축제는 ‘재난대응 매뉴얼’을 단순히 문서로 갖추는 것에 그치지 말고, 기획자, 자원봉사자,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모의 훈련 또는 시뮬레이션 체험을 콘텐츠로 통합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문화가 된 안전 시스템’이 된다. 기후위기는 예측이 아니라 적응이다. 그 적응력은 시나리오의 존재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