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축제 기획에 기상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자연은 달라졌고, 기획의 언어도 달라져야 한다

축제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연결하는 일이다. 계절의 변화, 지역의 정체성, 주민들의 일상, 방문객의 기대, 그리고 특정한 자연적 상징을 한데 엮어 문화적 경험으로 구성하는 작업. 바로 그것이 축제 기획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자연이 일정하게 움직인다는 전제’ 아래 작동해왔다. 우리가 봄꽃 축제를 4월 초에 계획하고, 단풍 축제를 10월 중순으로 정하며, 겨울엔 빙어잡기와 눈 축제를 기획할 수 있었던 건, 계절과 날씨가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이 예측 가능성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벚꽃은 매년 더 빨리 피기 시작했고, 단풍은 점점 늦게 물들고 있으며, 겨울의 강은 더 이상 얼지 않고, 눈은 쌓이지 않는다. 여름은 짧고 갑작스러운 장마와 폭염의 반복이고, 가을은 태풍과 미세먼지, 그리고 국지성 폭우의 연속이다. 축제를 만든다는 것은 곧 자연을 전제로 인간의 문화를 설계하는 일인데, 이 자연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면 기획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일정을 정하고, 장소를 고르고, 운영을 준비해야 할까?

우리는 이제 단순한 감각, 직관, 경험에만 의존한 기획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를 만든다는 것은 곧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를 해석하고, 그에 따라 문화적 선택지를 조정하는 일이다. 기상 데이터는 이 시대 기획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새로운 언어이며, 축제 기획의 출발점이자 최후의 안전장치다. 이 글에서는 축제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기상 데이터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실제 일정·장소·운영·예산·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다룬다.

 

기상 데이터

데이터는 ‘사후 확인용 참고자료’가 아니라, 축제 기획의 출발점이다

많은 축제 기획자들은 행사일이 가까워지면 일기예보를 확인하곤 한다. “비가 올까 봐 걱정돼요”, “기온이 높으면 관람객이 줄 텐데요”, “작년에는 바람 때문에 고생했어요”라는 말들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모두 ‘기상 정보를 사후 대응의 도구’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축제를 진정으로 기후위기에 맞게 설계하고자 한다면, 데이터는 일정이 정해지고, 장소가 정해지기 이전, 즉 기획의 가장 초기 단계부터 들어와야 한다.

기상청과 환경부는 이미 수많은 지역 기후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중랑구에서 최근 10년간 7월 중순에 평균 기온은 몇 도였고, 그 기간에 강수일은 며칠이었으며, 폭염주의보는 몇 번이나 발령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국지적인 열섬현상, 바람의 방향과 평균 풍속, 습도와 체감온도까지 정량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일시에 특정 장소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의 리스크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단기 예보뿐 아니라 ‘계절 예측 자료’도 유용하다. 기상청은 매년 3개월 단위의 강수량, 기온, 고온·한파 가능성 등을 지역별로 전망하며, 이 정보는 축제 일정 결정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를 날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날씨를 예측하고 이해한 뒤 축제를 거기에 맞춰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기획자는 더 이상 ‘그럴듯한 감’이 아닌, 기후 데이터에 근거한 설계자여야 한다.

기후 시뮬레이션은 ‘위기 대응력’을 설계하는 도구다

기상 데이터는 단순히 ‘날씨 예측’의 의미만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축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상황에 대한 사전 시뮬레이션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지역에서 3일 연속 폭염이 이어졌을 경우, 어느 시점에서 몇 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할 수 있는지, 혹은 강풍이 초속 12m를 넘었을 때 설치된 구조물의 붕괴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우천 시 우수 배수로가 감당할 수 있는 강우량의 한계치는 얼마인지를 계산하고, 그에 따라 대응 매뉴얼을 구조화할 수 있다.

이미 일부 지자체는 재난관리 부서와 협업해 행사 장소별 기후 위험도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있으며, 축제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우천시 자동 철수 시점’, ‘돌풍 발생 시 이동형 구조물 철거 시간표’, ‘폭염 단계별 쿨링존 확장 시나리오’ 등을 작성하고 있다. 이는 단지 안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기획자가 기후 리스크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관람객과 시민의 생명과 경험을 동시에 지키는 일이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은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기반 자료뿐만 아니라, 민간의 전문 기상 정보 플랫폼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특히 최근에는 행사 당일 시간대별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 미세먼지 농도, 체감 온도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이 도입되어 있으며, 앱이나 자동 알림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대응도 가능해지고 있다. 중요한 건 기획자의 인식 전환이다. 축제는 더 이상 감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데이터는 기획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설계 파트너’다.

장소는 ‘보이는 조건’보다 ‘숨어 있는 기후 리스크’를 따져야 한다

축제 장소를 고를 때 대부분은 접근성, 경관, 무대 설치의 용이성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도심의 광장, 하천변 공원, 운동장, 시청 앞 거리 등은 많은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고, 이미 조성된 시설이 있어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자주 활용된다. 그러나 이런 장소들이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도심 광장은 열섬 현상이 극심해 여름철 실측 지면 온도가 45℃에 달하기도 하며, 하천변 공원은 국지성 집중호우 시 침수 위험이 크다. 운동장은 바람이 통하지 않고 구조물 붕괴 시 대피로가 제한되며, 넓은 콘크리트 바닥은 체감 온도를 극단적으로 높인다.
이때 기획자는 눈에 보이는 조건만 볼 것이 아니라, 공공 기상·환경 데이터 기반으로 숨겨진 리스크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기상청의 ‘기후변화 취약성 지도’, 국토부의 ‘재해취약지도’, 환경부의 ‘열섬지수 맵’, 재난안전포털의 ‘강풍 시뮬레이션 지도’ 등은
장소의 숨은 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는 필수적 자료다.
이런 자료들을 활용하면 단순히 ‘어디가 예쁘고 유명한가’가 아니라,
‘어디가 안전하고, 위기 시 회복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장소를 재선정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 장소는 접근성보다 복원력, 공간 구성보다 회피 가능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