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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생태축제, 단지 친환경 콘셉트인가?

 ‘친환경’이라는 말이 너무 가벼워진 지금, 우리는 축제를 어떻게 다시 물어야 하는가

기후위기가 일상적인 단어가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문화 기획이나 행사 운영에서 ‘친환경’이라는 개념을 당연히 언급하게 되었다. 이제 지역축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공공행사는 포스터 어딘가에 “지속가능성”, “탄소중립”, “친환경 운영” 같은 문구를 집어넣는다. ‘환경을 생각하는 축제’라는 이미지는 이제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사실상 시민과 행정 모두에게 받아들여진 도덕적 전제조건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빠른 언어의 확산은 때때로 본질적인 질문을 흐린다.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생태축제란 무엇인가? 축제 현장에 다회용 컵을 배치하고, 행사 종료 후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고 해서, 그 축제가 정말로 지속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환경 보호 메시지를 담은 부스를 설치하고, 초록색 현수막을 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탄소중립 실천의 증거가 되는 걸까? 축제장에서 재활용 분리수거를 잘했다고 해서, 우리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올바른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개인의 양심이나 노력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친환경적 태도’의 부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구조의 문제다. 생태축제는 그 구조를 다시 묻고, 문화적으로 실험하고, 사람들과 함께 되짚어보는 중요한 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축제를 기획하는 이들이 혹은 참여하는 시민들이 ‘생태’를 이야기할 때 어떤 기준과 감수성을 가져야 할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생태는 포장이 아니라 방식이다. 생태적 축제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친환경 생태축제

 주제를 넘어서야 실질적 변화가 시작된다 — 생태는 전시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다

많은 지역축제들이 생태적 가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행사 이름 앞에 ‘녹색’, ‘지속가능’,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프로그램 안에 생태 체험 부스나 로컬푸드 마켓을 삽입하며, 관람객에게는 개인컵과 에코백을 지참하라는 안내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이 자체는 긍정적인 변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환경’은 축제의 주제가 아니었고, 기획의 조건도 아니었으며, 예산과 상관없는 부수적 활동 정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선언적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생태적 전환은 주제나 디자인의 변화가 아니라 운영 구조 자체의 재설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생태축제라는 명칭을 쓰는 행사라면, 우리는 더 깊은 질문을 해야 한다. 축제를 위한 전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디젤 발전기를 쓰는가, 태양광을 사용하는가? 음식물 쓰레기는 어디로 가며, 그 처리 비용은 어떻게 예산에 반영되었는가? 행사장으로 오는 이동수단은 자가용 중심인가, 대중교통 중심인가? 부스를 짓는 자재는 축제 후 어떻게 재사용되며, 일회용품은 얼마나 줄었는가?

이처럼 생태적 축제는 단지 ‘환경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제가 환경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며 운영되는가에 대한 전반적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 안에는 물리적 장비, 인력 배치, 자재 선택, 이동 경로, 폐기물 처리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생태는 콘텐츠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우리는 자연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설계 방식에 포함시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형식적 친환경과 실질적 생태축제를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제 축제에 ‘환경’이라는 단어가 붙었다고 해서 우리는 자동으로 그것을 생태적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아무런 실천이 없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는 환경 마케팅의 한 형태이자 ‘그린워싱’(Greenwashing)의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축제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제 ‘슬로건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었는가’여야 한다.

우선, 일회성 체험과 구조적 실천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나무심기 체험은 잠깐의 체험이지만, 전체 축제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고 그에 맞는 감축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실천이다. 생태 주제를 다룬 전시회는 메시지 전달이지만, 행사장 전체 전력을 태양광으로 운영하고, 무대 조명을 에너지 절감 장비로 교체하는 것은 실천이다. 이처럼 콘텐츠 중심에서 벗어나 운영 구조 전반에서 환경적 감수성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또한, 생태축제는 단지 축제 기간에만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가 끝난 뒤에도 지역 공동체 안에서 실천이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축제에서 배운 탄소 감축 경험이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되고,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이 학교나 마을 활동으로 이어지며, 축제에서 만든 재활용 작품이 마을 커뮤니티 공간에 영구적으로 전시되는 방식으로 ‘축제 이후의 지속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생태는 일회적 이미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문화적 실천이어야 한다.

진짜 생태축제는 지역의 생존 감각과 공동체의 전환력을 높인다

축제는 일시적 기쁨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역 사회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하는 매우 중요한 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생태축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기후위기로 인해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지역의 생태환경 속에서, 축제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감정적 위로’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사회적 실험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로컬푸드를 주제로 한 축제라면, 단순히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장터로 그칠 것이 아니라, 축제를 통해 로컬푸드 공급망의 취약성을 점검하고, 기후위기 상황에서 농업 생산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다루며, 마을 주민들이 식량 자립과 순환 경제를 실험해보는 문화적 실험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플라스틱 없는 축제는 쓰레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 단위에서 리필 스테이션이나 공동 세척소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공동체 기반 실천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생태축제는 사람들의 감정을 모으는 공간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생기는 상실, 불안, 우울을 단지 통계로만 설명하지 않고, 예술과 놀이,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가 공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문화적 리추얼로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생존과 연결, 회복과 전환의 감각을 체득하게 된다. 결국, 진정한 생태축제는 지역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감각을 심어주는 일이며, 기후위기 시대의 시민성과 공동체 감수성을 회복하는 공간이 된다.

생태를 말할 것이 아니라, 생태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환경’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환경적으로 작동하는 축제,즉 생태적 설계 원리가 전 과정에 녹아든 새로운 기획 구조다.

생태축제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그것은 한두 개 프로그램을 바꾸는 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력 구조, 이동 방식, 자재 사용, 시민 참여, 지역 연계, 지속성 보장까지
전반적인 운영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진짜 생태축제는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하면서도
더 많은 공동체의 감정을 모으고,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하면서도
더 깊은 삶의 실험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축제는 단지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는 공공의 실천 공간이다.
생태를 말하지 말고, 생태적으로 존재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후위기 시대에도
축제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