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배우는 공간으로서의 축제
지역축제는 오랫동안 ‘문화소비’의 상징이었다. 주민들이 모이고, 예술가들이 공연하고, 관광객이 찾아오며, 음식과 경관과 이벤트가 어우러지는 이 일회성 공간은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일상의 반복성에서 벗어나는 작은 탈출구였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축제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더 이상 축제는 ‘사계절의 순환을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다. 계절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자연의 리듬이 어긋나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축제의 배경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벚꽃은 너무 일찍 피고, 단풍은 점점 늦게 물들며, 얼음축제는 얼음이 얼지 않아 사라지고 있다. 여름 축제는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해 취소되기 일쑤이며, 야간 축제는 열대야 속에서 시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런 변화는 단지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문화의 형태가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때, 지역축제는 단순히 과거의 반복을 이어가는 소비형 콘텐츠가 아니라, 기후시대의 시민 감수성을 키우고, 지역 사회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교육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축제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축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이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무엇을 배우고 돌아가는가?
이 축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삶에 대해 어떤 상상력을 제공하는가?
축제는 ‘배움’이 일어나는 가장 감각적인 장소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기후위기처럼 감정적이고 실천적인 이해가 필요한 주제는, 책이나 이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야만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축제는 바로 그런 학습이 일어나는 최고의 문화적 공간이다. 축제는 사람을 모으고, 이야기를 만들고, 행위를 공유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기후 감수성과 생태 감각을 체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비형식 교육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예컨대, 플라스틱 프리 축제를 운영하면서 ‘왜 일회용 컵을 쓰지 않는가’를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알려줄 수 있다. 사람들이 직접 다회용기를 씻고, 반환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불편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며,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보다 훨씬 강력한 인지적 변화로 이어진다. 또, 마을 쓰레기 줍기 행사를 단지 ‘정화활동’이 아닌 하나의 퍼레이드 형식으로 기획하여, 지역 아이들과 주민들이 함께 쓰레기 배출의 구조와 플라스틱 순환 문제를 체험하는 교육적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축제를 설계한다면, 기후위기 대응은 개인의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 속에서 학습된 사회적 감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배움은 의무가 아닌 즐거움으로, 실천은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축제는 ‘체험형 시민교육’의 최적 구조다.
기획자는 ‘기후교육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축제 기획자의 역할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짜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는 ‘기후교육 콘텐츠 디자이너’이자 ‘시민 감수성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환경 교육 콘텐츠를 하나 추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축제 전체를 관통하는 기획 철학과 운영 전략에 교육적 시선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축제의 주제 설정 자체가 교육적 질문을 품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왜 계절을 잃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봄 축제는, 단지 꽃을 보는 축제가 아니라, 사라지는 계절에 대한 기억과 대응을 함께 배우는 기획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상기후에 흔들리는 농산물”을 주제로 한 로컬푸드 마켓은 먹거리의 불안정성과 지역 자립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고, “기후재난 이후 마을의 생존법”을 다룬 야외 퍼포먼스는 단지 예술이 아닌 커뮤니티 회복 교육으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축제를 통해 학습이 발생할 수 있는 장치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강의나 안내문이 아니라, 축제의 동선·콘텐츠·참여 방식 안에
체험적 학습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창의적인 시도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시민 챌린지를 스탬프 방식으로 운영하고,
그 결과를 실시간으로 축제 현장에 시각화하거나,
기후 실천 미션을 완수한 참가자들에게 ‘기후시민 인증서’를 발급하는 등의
문화적 인증과 피드백 구조를 함께 설계할 수 있다.
기획자는 단순히 행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을 문화적으로 제안하는 교육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갖춰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형 축제와 지역 교육이 만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후시대의 축제는 지역 교육과 긴밀히 연결될 때 진짜 힘을 갖는다.
지역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축제를 연계하거나,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일부로 축제 체험을 포함시키는 것은
기후 감수성을 세대 전체에 확산시키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남 순천에서는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를 축제와 교육이 결합된 구조로 기획하여,
지역 청소년들이 환경 해설사로 활동하며 축제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학교에서 배운 생태교육을 축제 현장에서 체험형 활동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실현했다.
이러한 구조는 학생들뿐 아니라, 지역 학부모와 교사, 행정과 시민단체를 연결하며
‘기후시민으로서의 공동 실천 문화’를 정착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뿐만 아니라, 성인 대상 기후리터러시 교육이나
기후 심리 회복 프로그램을 축제 내 프로그램으로 통합하면,
일시적인 흥미를 넘어서 장기적인 인식의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축제는 ‘학습과 실천의 접점’이 되어야 하며,
그 접점이 제대로 작동할 때
지역 전체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감각을 공유하는 생태문화 커뮤니티로 확장될 수 있다.
축제는 문화이고, 문화는 교육이다 — 기후시대의 교육은 감각에서 시작된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 배움은 단지 지식을 축적하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온도 변화와 탄소 농도, 기후법의 변화와 탄소세 제도 같은 숫자와 용어만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감각이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작은 실천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고, 누군가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마음의 반응. 그것이 감수성이고,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축제는 바로 그 감각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딱딱한 교실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광장에서. 설명이 아닌 체험으로, 혼자가 아닌 함께로. 기후위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람들에게 ‘살아보게’ 할 수 있는 공간은 교과서가 아니라 축제장이다. 그렇기에 축제는 더 이상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역과 세대가 함께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감각 중심 교육 인프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기획자는 축제의 메시지와 형식, 구조를 모두 다루는 사람이다. 그가 교육자로서의 시선을 갖는다면, 그가 만드는 축제는 단지 프로그램이 아닌 하나의 살아있는 교실이 될 수 있다. 관객은 관람객이 아니라 학습자가 되고, 참여자는 실천자가 된다. 문화는 곧 교육이 되고, 교육은 다시 지역의 전환력으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축제는 물어야 한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축제가 끝난 후 사람들의 행동은 바뀌었는가?
기후위기 앞에서 그들은 더 공감하게 되었는가?
이 축제는 지역의 다음 세대를 위한 학습의 장이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축제는 이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기후시대의 축제는 단순한 환대가 아니라,
삶을 바꾸는 공공의 수업이어야 한다.
그 수업은 바로, 지금 우리가 설계하는 축제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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