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축제 시즌은 유효한가? 기후변화에 따른 일정 재구성 전략”

무너지는 계절의 시간표, 축제는 어디에 맞춰야 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계절’이라는 안정적인 리듬 위에 축제를 설계해왔다. 봄에는 벚꽃과 유채꽃, 여름에는 바다와 물놀이, 가을에는 단풍과 추수, 겨울에는 눈과 얼음을 테마로 한 지역 축제가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다. 축제는 계절의 상징을 기념하는 방식이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환과 지역의 정체성을 느꼈다. 예측 가능한 자연현상이 있었고, 그에 따라 1년 전부터 행사 일정과 공연, 체험 콘텐츠, 숙박과 이동 계획까지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기후위기’라는 이름 아래,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계절은 더 이상 정직하지 않다. 벚꽃은 예정보다 7~10일 빨리 피고, 단풍은 제때 물들지 않으며, 겨울은 눈이 아닌 미세먼지가 뒤덮는 시기로 변해버렸다. 날씨는 지역마다 오락가락하고, 기온은 비정상적으로 오르거나 급강하하며, 봄과 가을은 ‘짧아지는’ 정도를 넘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계절 고정형 축제 운영’은 유효한 전략일 수 있을까? 이제는 '봄에 무조건 벚꽃축제', '가을엔 단풍 축제'라는 식의 기획이 오히려 실패로 이어지는 구조가 되었다. 더는 ‘계절’을 믿고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시대다. 변화는 명확하다. 문제는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기획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더 이상 가을 단풍축제는 없다

고정된 축제 시기, 기후변화에 의해 붕괴되는 현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 현상의 변화는 더 이상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축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실패와 혼란으로 나타나고 있다. 벚꽃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엔 서울 기준으로 4월 초에 개화가 이뤄졌지만, 최근 10년 동안 그 시점은 3월 말로 당겨졌고, 2024년에는 역대 가장 빠른 3월 26일에 개화가 시작되었다. 반면, 단풍은 반대다. 평균 기온이 늦게 떨어지면서 단풍 시기는 점점 뒤로 밀려나 10월 중순이 아니라 11월 초~중순에 절정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뿐 아니라 겨울축제에서 눈이 내리지 않아 눈 조형물을 만들 수 없거나, 얼음이 얼지 않아 빙어잡기 체험을 취소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날씨가 좀 이상해졌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축제는 관광, 지역경제, 행정, 교육, 문화 콘텐츠가 모두 얽힌 복합 시스템이다. 축제 일정이 어긋난다는 것은 곧 기획 실패, 계약 차질, 예산 낭비, 관람객 감소, 지역 상권 피해로 이어진다. 벚꽃축제가 일주일 늦거나 빠르면, 대형 여행사나 숙박업체는 예약 취소에 직면하고, 관광객들은 만족하지 못한 채 돌아간다. 단풍이 절정이 아닐 때 열리는 가을 축제는 ‘핵심 콘텐츠가 빠진 이벤트’로 전락한다. 이런 구조적 손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더 심각하게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축제 기획은 여전히 ‘고정된 달력’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이는 행정 시스템과 계약 방식, 관광 마케팅 구조가 모두 연례 반복성과 사전 확정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축제는 점점 기후위기의 희생양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방식의 기획 언어가 필요하다. ‘일정은 언제인가?’라는 질문 대신, ‘자연이 허락하는 시점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연한 일정 설계, 지역 맞춤형 기후 탄력 전략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정해진 날짜에 자연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축제를 맞추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가변형 일정’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벚꽃, 단풍, 결빙 등 자연현상을 기반으로 한 축제는 더 이상 고정된 날짜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매년 해당 현상이 관측되거나 예측된 시점 이후 일정 범위 내에서 유동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행정 시스템과 시민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경남 하동군은 벚꽃 개화 시기가 매년 달라지는 점을 반영해, ‘하동 십리벚꽃 축제’를 고정일이 아닌 “개화예상일 + 5일”을 기준으로 탄력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와 같이 지역 내 기상청, 국립산림과학원, 생태관측단과 연계해 지역별 기후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에 따라 기후 기반 탄력 스케줄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히 기획 유연성 확보를 넘어서, 시민들에게도 기후변화를 체감하게 하고, 축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문화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연현상이 없어도 축제를 지속할 수 있는 콘텐츠 확장 전략도 중요하다. 만약 벚꽃이 피지 않거나 단풍이 들지 않는 해가 와도, 축제의 의미와 메시지가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꽃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을 기다리는 마음, 변화된 계절에 적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마을 공동체의 활동 등을 콘텐츠로 기획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단풍이 없어도 숲을 걷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눈이 없어도 추운 계절의 공동체 방식을 탐구하는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행정 시스템과 계약 구조의 병렬 혁신이 필요하다

문제는 유연한 축제 일정을 구성하자는 아이디어만으로는 변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축제는 수개월, 많게는 1년 전에 계약과 예산이 확정되고, 참여 업체와 프로그램이 정해지기 때문에 ‘날짜를 바꾸기 어려운 시스템’에 갇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계약 구조 자체를 가변형 일정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스 설치, 공연 섭외, 납품 일정 등을 고정일이 아닌 ‘예상 범위형’으로 조정하고, 일정 변경에 따른 유예 기간, 손해 면책 조항 등을 행정 매뉴얼에 포함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주민과 관람객을 대상으로도 ‘유동적 운영’에 대한 인식을 미리 공유해야 한다. 대부분의 시민은 축제 일정이 바뀌면 불편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기후변화로 인해 불가피한 조정’이라는 맥락을 충분히 설명받는다면 오히려 그 축제에 대한 신뢰와 공감이 높아질 수 있다. 이는 단지 공지사항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설명하는 문화적 콘텐츠, 변화된 시간 감각을 교육하는 안내 시스템, 그리고 축제 자체의 메시지를 기후시대에 맞게 바꾸는 감각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고정된 계절이 무너진 시대, 축제는 어떤 시간을 따라야 하는가?

기후위기는 자연을 변화시켰고, 자연은 시간표를 흔들었다. 지금 우리는 ‘더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계절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축제가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지 운영 방식의 개선을 넘어서, 시간을 기획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축제는 더 이상 달력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대신, 변화하는 자연을 주시하고, 그 흐름에 조심스럽게 맞추며, 인간의 감각과 문화를 다시 설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달력은 인공적인 장치다. 하지만 축제는 생명과 지역의 문화가 녹아 있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고정될 수 없고, 바뀌어야 하며, 새롭게 다시 쓰여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는 단지 봄을 축하하는 행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공공의 문화적 선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