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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기후위기 시대, 지역축제는 문화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기후위기를 피하는 축제”는 없다 — 이제는 축제 그 자체가 해답이 되어야 할 때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상기후는 계절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재난의 빈도를 높이고 있으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던 계절의 풍경과 일상의 감각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축제에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봄이면 피어야 할 꽃이 시기를 놓치고, 겨울이면 얼어야 할 강이 얼지 않으며, 여름은 생존을 위협하는 폭염의 계절이 되었다. 이처럼 날씨의 불안정성과 생태적 불균형이 일상화된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축제는 과연 무엇을 축하하고,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지역축제는 계절성과 풍요, 공동체의 삶을 되새기는 행사였다. 특정한 자연 현상—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는—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의 주기를 인간의 리듬과 맞추며 공동체적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자연의 리듬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 리듬에 맞춰 만들어졌던 축제의 틀도 다시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지역축제는 단지 이전의 계절을 추억하고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전환적 메시지를 어떻게 제안하고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없이는 어떤 축제도 시대를 설득할 수 없다.

 

기후위기시대

기후위기는 지역축제의 운영 방식과 존재 의미 모두를 바꾸고 있다

기후변화가 지역축제에 미치는 영향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먼저 물리적 운영 방식에서 변화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벚꽃축제를 매년 4월 첫째 주에 열던 도시들은 더 이상 그 날짜에 꽃이 피지 않거나, 이미 져버린 꽃 아래에서 행사를 강행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눈축제나 얼음축제를 개최하던 지역들은 결빙이 되지 않거나 강수량 부족으로 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축제를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했다. 또한, 폭염·태풍·산불·집중호우 등의 위험은 대규모 야외행사를 예정대로 개최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실제로 지난 5년간 태풍이나 폭우로 축제가 취소되거나 일정이 변경된 사례가 전국적으로 수십 건에 이른다.

그러나 변화는 단지 외형적인 운영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욱 본질적인 변화는 축제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왜 축제를 여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지역축제는 자연의 순환성과 풍요를 기념해왔지만, 기후위기 시대는 풍요의 서사가 아니라 ‘상실’과 ‘회복’, ‘적응’과 ‘공존’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키워드를 요구한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봄의 꽃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더 이상 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슬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되고 살아가려는 의지를 함께 축제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이는 축제를 문화적 전환의 매개체로서 재정의하는 작업이다.

축제는 문화적 전환의 촉진자다 — 시민 감정, 지역 공동체, 상상력을 묶는 힘

축제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모으는 일이지만, 단순히 신체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아니다. 축제는 감정을 모으고, 기억을 모으고, 질문을 모으는 장치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는 문화적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 가장 강력한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시민은 정부의 보도자료나 뉴스보다 축제 현장에서 기후위기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행동으로 연결되는 감정적 동기를 얻는다. 이는 단순히 정보 전달이나 교육 콘텐츠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적 경험’으로서의 작동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고성군의 산불 피해 마을에서는 축제를 통해 주민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냈다. 잿더미가 된 숲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등불을 들고 함께 걸으며, 이웃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다시 마주보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체의 감정을 회복하고, 생존 이후의 삶을 재구성하는 리추얼이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이렇게 지역이 겪은 위기와 감정을 말로, 몸으로, 기억으로 다시 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또한 축제는 그 자체로 시민의 상상력을 키우는 사회적 시뮬레이션이 될 수 있다. 예컨대, 탄소중립 사회에서는 어떤 삶이 가능할까? 대중교통으로만 이동하는 도시는 어떤 풍경일까? 플라스틱 없이 먹고 마시는 경험은 가능할까? 이런 상상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설계할 수 없고, 실험해보는 경험 없이는 시민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축제는 바로 이런 미래의 삶을 짧은 시간 동안 ‘살아보는 실험실’로 작동할 수 있다. 즉, 문화적 전환은 추상적 지시가 아니라, 축제라는 구체적인 행위 속에서 현실화된다.

 기후시대의 축제는 ‘기억’과 ‘예방’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과거의 기념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계절이 어긋나고, 자연이 사라지면, 그에 기대었던 축제의 전통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곧 모든 문화적 기억을 잃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사라져가는 계절과 자연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문화적 기록장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라진 눈”을 주제로 눈 없는 겨울에 펼쳐진 축제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이 함께 눈에 대한 기억을 그림으로, 말로, 사진으로 표현하고 기록하는 프로그램은 단지 아카이브 작업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문화유산의 일환이다.

그리고 동시에 축제는 예방의 공간이기도 해야 한다. 폭염 대응 훈련, 생태 교육, 저탄소 생활 실천 등이 문화 콘텐츠와 결합될 수 있다면, 시민들은 축제를 통해 배우고, 일상으로 가져가는 ‘예방적 문화 실천’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축제에서는 쓰레기 제로를 목표로 다회용기 사용을 기본으로 하고, 참가자에게 ‘탄소 절감 스탬프 카드’를 제공해 행동이 점수화되도록 유도했다. 이는 축제에서 얻은 체험이 곧 ‘지속가능한 행동으로의 전환’을 끌어내는 좋은 예다.

 이제 축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언어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인간이 만든 문제이지만, 그 피해는 생태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 거대한 문제 앞에서 정책, 기술, 금융 시스템의 대응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전환은 그 이전에,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 상상력이 바뀌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그 감정과 상상력의 언어가 바로 문화이고, 그 문화가 가장 집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축제다.

기후위기 시대, 지역축제는 단지 ‘열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열려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열려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지역축제가 감히 이 시대의 문화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책과 기술이 닿지 못하는 공감의 층위, 생활의 층위, 그리고 공동체의 감정의 층위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축제를 통해 잃어버린 계절을 기억하고, 바뀐 시간에 적응하며,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상상할 수 있다면, 축제는 단지 한순간의 기쁨이 아니라, 기후시대의 새로운 생존 도구이자 문화적 대안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축제가 이 위기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