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축제가 불가능해진 시대, ‘축제를 줄이는 것’이 아닌 ‘축제를 다르게 설계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는 지역축제의 방식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매해 반복되는 폭염, 국지성 호우, 대형 태풍은 더 이상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상수(常數)가 되었고, 대규모 야외 축제는 점점 더 위험하고 불확실한 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수천 명이 밀집한 도심 광장이나 한강변 공원, 정해진 시간 안에 몰려드는 관광객 중심 구조는 ‘기획된 성공’이 아니라 ‘재난 위험을 내포한 모델’이 되었고, 이에 따라 기획자와 지자체는 축제를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축제가 사라져야 하는 걸까?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축제를 줄이기보다 작게 바꾸고, 넓히기보다 깊게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마을 단위의 소규모 축제’다. 이는 단순히 규모를 줄인 미니버전이 아니라, 탄소를 적게 배출하고, 생태적으로 안전하며, 공동체 회복력까지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플랫폼이다. 그 어떤 거창한 정책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하며, 기후위기 시대에 유의미한 문화적 실천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마을 축제가 기후위기 시대에 왜 중요한지, 어떤 구조적 이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무엇을 더 보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본다.
작지만 강력하다: 소규모 축제의 생태적 구조
우선, 소규모 마을 축제의 가장 큰 강점은 자체 구조에서부터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된다는 점이다. 대형 축제가 필요로 하는 대형 무대, 음향장비, 고출력 조명, 냉방 장치, 행사 부스, 임시 전력 설비, 대규모 차량 물류는 모두 기후위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탄소 유발 요소들이다. 그러나 마을 단위 축제는 애초에 그것들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북 임실의 한 마을에서 열리는 ‘들녘걷기 축제’는 논두렁을 따라 주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걷고, 다 같이 새참을 나눠 먹고, 마을 밴드가 나무 아래서 연주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행사에 쓰이는 시설 대부분은 마을 회관의 평상, 주민이 직접 만든 현수막, 지역 목수가 만든 이동식 구조물 등이다. 이 축제를 위해 들어온 차량은 딱 한 대, 음향 장비도 스피커 하나로 끝난다. 전력 소모량은 대형 축제의 1/30 수준이며, 쓰레기 발생량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이런 축제는 별도의 탄소중립 기술이 없어도, 그 자체로 저탄소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마을 축제가 단지 ‘작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문화적 형식으로 근본부터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공동체의 손으로 짓는 축제: 기후위기 대응을 ‘문화화’하는 구조
기후위기는 정부나 기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기후 위기 대응은 결국 생활의 전환, 행동의 변화, 시민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 연결고리를 문화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 ‘축제’다. 특히 마을 축제는 지역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하고, 운영하며, 폐회 후에도 커뮤니티 안에서 축제의 의미를 되새기는 구조를 갖기 때문에 일시적 이벤트가 아닌 ‘생활 속 전환 문화’로 축제를 내재화할 수 있는 특장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강원도 인제의 한 마을에서는 여름마다 ‘기후변화 대응 마을학교’와 연계한 소규모 축제를 연다. 이 축제에서는 주민이 직접 만든 태양광 랜턴을 들고 마을을 걷고, 재활용 자원으로 만든 미술작품을 전시하며, 어르신이 기후변화 전후의 마을을 설명하는 ‘구술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관람객을 위한 체험이자, 주민을 위한 학습의 장이 되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축제 그 자체가 기후위기를 배우고 대처하는 ‘공동의 문화교육’이 된다.
이처럼 마을 축제는 단지 재미있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가 기후위기에 대해 학습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실천을 훈련하는 리추얼(ritual)이 된다.
그것은 더 이상 ‘보는 행사’가 아니라,
삶을 훈련하고 돌보는 구조로서의 축제라고 말할 수 있다.
리스크는 줄이고, 관계는 넓히는 분산형 문화모델
마을 축제의 또 다른 장점은 위험 분산 구조에 있다. 대형 축제는 예산, 일정, 홍보, 리스크가 모두 한 행사에 집중되어 있다. 하나의 축제가 취소되면 해당 지역의 한 해 문화 사업과 경제 효과가 모두 무너진다. 반면 마을 단위 축제는 소규모 축제가 여러 개 분산 운영되므로 리스크가 줄어들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충남 서산시는 2023년부터 대형 축제 한 건을 없애고, “작은 마을축제 10개 연계형”으로 전환했다.
각 마을은 ‘기후’를 테마로 마을 특성에 맞춘 축제를 운영하며, 공통으로 ‘기후실천 미션 챌린지’를 연결해 관광객은 여러 마을을 돌며 저탄소 미션을 수행했다. 이런 구조는 축제 운영 예산을 분산하고, 주민 참여율을 높였으며,
기후위기 실천의 사회적 경험을 축제의 본질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분산된 소규모 축제는 동시다발적 기후재난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 곳이 비로 취소되더라도 다른 마을에서의 운영은 지속될 수 있고, 예산은 단일 대형 행사의 실패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런 구조적 안정성은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문화 인프라 설계에 있어 핵심이다.
축제는 크기보다 방식이 중요하다 — 기후시대, 작은 것이 오래간다
기후위기는 모든 것을 재설계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전처럼 큰 무대를 설치하고, 화려한 조명을 켜고, 수천 명을 한 공간에 몰아넣는 방식의 축제를 반복할 수 없다. 더는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이 성공 기준이 아니다. 이제는 더 작지만, 더 안전하고, 더 정직하고, 더 지속가능한 축제가 진짜 성공한 축제다.
마을단위 소규모 축제는
✔ 탄소를 적게 배출하고
✔ 기후 리스크에 강하며
✔ 지역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 학습과 실천을 문화화하며
✔ 재난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분산형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기획 예산을 줄이고, 문화적 효과는 높이는 구조다.
이제는 축제를 키우려 하지 말고, 다르게 설계하자.
작은 축제가 기후위기 시대의 지속가능한 문화실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당장 올해, 마을 광장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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