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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축제,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탄소를 줄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환

"지구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IPCC 보고서에 나온 이 한 줄은 더 이상 과학자들의 경고가 아니다. 현실이다. 한국의 여름은 매해 폭염과 국지성 호우가 반복되고 있고, 가을과 봄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모든 산업과 개인에게 ‘탄소 감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생존 조건이 되었다. 축제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대부분의 지역축제는 여전히 높은 에너지 소비, 일회용품 사용, 비효율적 물류 운영, 과잉 조명과 무대 장비 등을 통해 적지 않은 탄소를 배출하는 고밀도 소비 이벤트로 진행되고 있다. 어떤 축제는 3일간 수천 명이 몰리는 동안 평균 15~20톤의 탄소가 발생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말하는 축제가 신뢰를 얻으려면, 단지 ‘탄소중립’이라는 말을 슬로건에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운영 전반을 바꾸고, 콘텐츠와 참여 방식을 재설계하는 근본적인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축제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바꿔야 할까? 이 글에서는 기획 → 운영 → 참여 → 기록 단계별로 축제가 실질적으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탄소중립

 ‘화려함’보다 ‘효율과 책임’을 설계하라

탄소중립 축제의 핵심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존 축제 기획은 가시성과 외형적 규모, 즉 “얼마나 큰 무대를 설치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장비와 부스를 만들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추구한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축제의 기본 기획 철학이다.

우선, 행사 일정과 장소부터 탄소 배출량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심 외곽에 위치한 장소에서 야간 위주로 운영되는 축제는 대규모 조명 사용과 차량 이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이 높다. 반면,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주간 위주 운영이 가능한 장소는 그 자체로 기본 탄소 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프로그램 구성도 고에너지 중심(예: 드론쇼, 대형 조명 퍼포먼스) 대신, 로컬 예술인 중심 공연, 낮 시간 자연 활용 콘텐츠, 저에너지 문화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면 탄소 소비를 줄이면서도 지역성과 문화성을 강화할 수 있다.

더불어, 협력업체 선정 기준에 ‘탄소 감축 실천 여부’를 포함하고, 모든 부스 설치 자재에 재사용 또는 지역 재료 사용 의무화를 적용하는 등의 기획 기준도 기후 시대에 걸맞은 전략이다.

운영단계: 전력, 물류, 자원 순환 시스템을 혁신하라

축제가 열리는 동안 가장 많은 탄소가 발생하는 영역은 바로 전기와 물류, 쓰레기다. 이 3대 요소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축제의 탄소 발생량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먼저 전기. 가능한 모든 조명, 음향 장비는 태양광 발전기, 이동형 ESS(에너지저장장치)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대체해야 한다. 서울의 일부 소규모 야외축제는 이미 LED 조명 전체를 태양광 패널 기반 장비로 교체하여 운영한 바 있다. 이는 초기 비용은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축제의 지속가능성과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투자다.

다음은 물류. 대부분의 축제는 설치와 철거, 납품과 운영을 위해 수많은 트럭이 오가며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 내에서 제작 및 조달 가능한 자원을 우선 사용하고,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는 공간 배치 설계가 필요하다. 실제로 한 지자체 축제는 전체 행사 동선을 직선 구조에서 순환형으로 바꾸고, 물류 창고를 현장 인근에 임시 설치하여 물류 이동 거리를 절반으로 줄였다.

자원 순환도 중요하다. 플라스틱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분리수거 체계를 철저하게 운영해야 한다. 축제 참여자에게 쓰레기 배출량을 직접 기록하고 환급받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참여자의 탄소 감축 의식도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참여 방식: ‘체험’이 아닌 ‘실천’을 유도하는 설계

이제 관람객은 단순히 축제를 구경하러 오는 대상이 아니라, 탄소중립의 실천자로 초대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참여형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 → 시민 → 행동 주체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탄소감축 챌린지’ 콘텐츠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 이용, 다회용기 지참, 지역농산물 구매, 걷기 참여 등 실천을 하면 축제장에서 탄소 포인트를 주고, 이를 굿즈나 지역 특산품으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참가자가 직접 탄소 절감을 경험하면, 축제에서의 기억이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훨씬 높아진다.

또한 축제 SNS나 앱을 통해 실시간 탄소 감축량, 다회용기 사용량, 쓰레기 절감 통계를 시각화하여 공유하면, 참여자들은 “내가 줄인 탄소가 축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정적 동기를 얻게 된다. 이 구조는 탄소중립 실천을 ‘재미’와 ‘의미’로 연결하는 설계다.

사후 기록과 투명한 공개: 축제의 탄소 발자국을 남겨라

축제가 끝나고 나면 대부분의 기획서는 관람객 수, SNS 노출, 경제 효과만을 남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탄소 회계’도 기록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축제 준비·운영·철거 전 과정에서의 에너지 사용량, 물류 이동 거리, 폐기물 배출량, 재사용률, 다회용기 회수율, 대중교통 이용률 등을 수치화해 정리한 ‘탄소 보고서’를 공개하면 축제에 대한 신뢰도와 사회적 책임감이 높아진다. 나아가 이 보고서를 다음 해 축제 기획에 반영하면, 매년 탄소 감축 성과를 누적시킬 수 있다.

일부 환경단체는 이와 같은 탄소 보고를 기준으로 친환경 축제 인증제(에코 페스티벌 인증)를 제안하고 있으며, 지자체들도 점차 이를 예산 평가 기준에 반영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감축할 수 없고, 공개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탄소중립 축제는 ‘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탄소중립 축제를 만들기 위해 모든 즐거움과 퍼포먼스를 줄여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덜 소비하면서도 더 풍성한 축제’를 설계할 수 있는 문화적 상상력과 기술적 전략이 필요한 시대에 들어섰다.

탄소를 줄이는 축제는 결국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는 것이고, 지역을 지키는 일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행위다.
앞으로 한국의 지역축제는 화려함보다 정직함, 규모보다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그 출발은 바로 “무엇부터 바꿀 것인가”를 지금 결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