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국 곳곳을 수놓던 지역축제들이 기후위기 앞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폭우, 길어지는 폭염, 태풍의 상습화 같은 이상기후는 축제 운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축제일수록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해 폐지되거나 장기간 중단되었던 대표적인 지역축제 5곳을 짚어보고, 해당 지역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부활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단순히 ‘축제를 다시 여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사라진 축제들 – 기후위기가 가져온 불가피한 폐지
기후위기는 한국의 전통적인 지역축제 운영 방식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로는 화천 산천어축제(강원도)가 있다. 매년 1월 얼음 위에서 진행되던 이 축제는 2020년 이후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해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아 4년 연속 취소되었다. 기존에는 12월 중순이면 얼음이 30cm 이상 얼었지만, 최근에는 1월 중순까지도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국 2024년, 화천군은 ‘산천어축제의 전면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또한 보성 벌교 꼬막축제(전남) 역시 이상기온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수온 상승으로 꼬막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주 원재료 수급이 어려워졌고, 2022년 이후 예년 수준의 축제를 유지하지 못해 ‘규모 축소’ 후 사실상 운영 중단 상태가 됐다. 이 밖에도 울진 금강송축제, 제천 국제한방바이오축제, 태안 튤립축제 등도 기후 문제로 일정 변경과 취소가 반복되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축제의 부활 시도 – 지역의 고민과 실험이 시작되다
그렇다고 모든 축제가 포기된 것은 아니다. 일부 지자체는 사라졌던 축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후적응형 모델’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화천 산천어축제는 2025년부터 ‘얼음 낚시’ 대신 ‘수중 생태관 체험’과 ‘AI 기반 어류 추적 게임’을 도입한 실내형 축제로 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기존의 자연환경 의존도를 줄이고, 날씨 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 체험 콘텐츠로 대체한 것이다.
보성군은 꼬막 생산량 감소에 대응해 축제 주제를 '해양 생태 교육과 수산물 다변화'로 변경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꼬막에만 의존하던 행사를 지역 어민과 협력하여 굴, 바지락, 다시마 등 다양한 해산물 체험축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의 부활은 단순히 이전의 축제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도 지역 경제와 문화적 맥락을 지켜내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후적응형 축제로의 전환 – 생존을 위한 선택
많은 지자체가 이제 ‘기후에 강한 축제’를 만들기 위한 전략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는 해양페스티벌에서 해변 야외 콘서트를 줄이고 해양 생태 영상관 및 실내 어촌체험관 운영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는 갑작스러운 태풍이나 해무, 폭염에 대비한 ‘기후리스크 분산형’ 운영 방식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경북 문경시는 ‘오미자축제’가 태풍으로 반복적인 일정 차질을 겪자, 온라인 라이브커머스를 중심에 두고, 전국 배송형 오미자 꾸러미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축제를 ‘현장 행사’로만 고정하지 않고, 비대면 콘텐츠와 연계함으로써 기후에 따른 리스크를 크게 줄였다. 이런 시도는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적용 가능한 모델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축제는 이제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 운영 전략의 일환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기후위기 속 축제의 본질을 다시 묻다
기후위기로 인해 지역축제가 사라지는 현실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동시에 이는 축제의 본질을 되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과거의 축제가 지역 특산물이나 자연조건을 전면에 내세운 ‘환경 의존형 구조’였다면, 이제는 그 환경이 변하는 만큼, 사람과 공동체 중심의 축제로 구조를 재정비해야 한다. 단순히 날짜를 바꾸거나 장소를 옮기는 대응으로는 부족하며, 축제의 운영 철학부터 기후위기에 맞춰야 할 시대다.
지자체는 지금 축제를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이어가는 문화 플랫폼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플랫폼은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변수 속에서도 유연하게 유지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사라진 축제를 되살리는 일은 단지 그 행사를 다시 여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환경 속에서도 지역이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축제의 본질은 결국 ‘함께함’이며, 그 함께함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가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사라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 축제의 부활은 지역의 회복과 닿아 있다
기후위기로 인해 사라진 지역축제는 단지 자연환경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지 못한 제도적·운영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축제는 완전한 복귀는 아니더라도, 형태를 바꾸거나 계절을 바꿔 운영하는 ‘복원 시도’를 통해 다시 시민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화천 산천어축제는 4년 연속 강이 얼지 않아 취소 또는 축소 운영됐지만, 2024년에는 강 위 낚시 대신 실내 수조 체험장, AR 산천어 탐험존, 수산물 쿠킹쇼 등을 중심으로 축제 콘텐츠를 재구성했다. 화천군은 이 구조를 ‘기후탄력형 모델’로 명명하며, 지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축제의 지속성을 위해 복원 전략을 장기화할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정선 고드름 축제는 이상고온으로 얼음이 얼지 않자, 축제 개막 시기를 2월에서 1월로 앞당기고, 야간조명을 활용한 빙벽 미디어 전시와 실내 조형물 전시로 콘텐츠를 재배치했다. 주민들은 “추운 겨울만 기다리기보다, 새 형태로 기억을 잇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평가하며 축제를 단순히 ‘그대로 살리는 것’이 아닌,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부활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기후에 맞서기보다, 기후에 적응하고 지역의 고유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축제를 재구성할 때, 사라진 축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복원 시도는 단순히 이벤트를 되살리는 차원을 넘어서, 지역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문화적 실험이기도 하다. 축제가 멈춘 자리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기후위기로 인해 축제가 사라졌다는 것은, 자연 조건이 바뀌었다는 신호일 뿐, 지역의 문화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사라진 축제의 부활은 과거를 복제하는 작업이 아니라, 미래를 재설계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축제의 본질은 단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왜, 어떤 의미로 그것을 함께 나누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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