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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플라스틱 없는 축제 만들기, 지방축제에서 먼저 시작한 실험

축제는 기쁨의 공간이자 소비의 공간이다. 그런데 바로 그 소비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자각이 늦게나마 확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환경 문제는 단연 ‘플라스틱 사용’이다. 1회용 컵, 비닐봉지, 포장지, 일회용 식기류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축제 현장은 이제 지구온난화의 숨은 진앙지로 지적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선도적으로 실천에 나선 축제가 있다. 한국 지방자치단체 일부는 이미 ‘플라스틱 없는 축제’를 실험 중이며,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 플라스틱 제로 축제를 실현한 사례들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 축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플라스틱 없는 축제 만들기

 

축제의 그림자 – ‘즐거움 뒤의 쓰레기’

축제는 짧게는 1일, 길게는 10일 넘게 이어지는 대규모 행사이며, 참여 인원이 수천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기도 한다. 서울시가 2023년 기준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3일간 개최된 한 대형 야외축제에서 하루 평균 약 2.3톤의 쓰레기가 발생했으며, 이 중 약 60%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이러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단순한 청소의 문제가 아니라, 소각 및 매립 과정에서 탄소배출로 이어지는 심각한 기후문제를 일으킨다.

축제에서 발생한 일회용품은 제대로 분리수거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기름기 묻은 플라스틱이나 코팅 종이는 재활용조차 어렵다. 더욱이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축제 특성상 날씨에 따라 쓰레기가 바람에 흩어져 인근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2차 피해도 발생한다. 축제는 즐거운 경험을 남기지만, 동시에 환경에 장기적인 흔적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순한 ‘청소 강화’가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는 시도가 필요하다.

지방에서 먼저 시작된 실험 – 제로웨이스트 축제의 현장

한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플라스틱 제로 실천 사례 중 하나는 충북 제천 ‘한방바이오축제’이다. 제천시는 2022년부터 축제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다회용 식기 대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방문객들은 식음료를 구매할 때 다회용기를 보증금과 함께 대여하고, 반납 시 환불받는 구조였다. 운영 초반에는 혼란도 있었지만, 시민들의 높은 참여율로 인해 2023년 기준 전체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이 70%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

또한 전남 순천의 정원박람회는 국내 최초로 ‘제로웨이스트 존’을 설정한 축제를 운영했다. 해당 공간에서는 플라스틱 빨대, 비닐 포장, 스티로폼 용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지정했고, 친환경 비건 푸드트럭과 종이포장소재를 활용한 식음료 부스를 운영했다. 축제 주최 측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 불편을 감수할 줄 아는 시민의식이 결국 축제의 질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방축제가 가장 먼저, 가장 과감하게 친환경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시스템화 – 정책과 시민의 협업

플라스틱 없는 축제를 실현하기 위해선 단순히 일회용품을 금지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운영 시스템, 시민의식, 홍보, 대체물품 확보, 인력 배치 등 종합적인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경기도 고양시는 2024년 ‘고양 꽃박람회’에서 모바일 앱 기반 다회용기 회수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민은 QR코드를 찍고 식기를 대여하며, 반납 시 자동으로 보증금이 환급되는 방식이었다. 이 시스템은 회수율 98%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일부 축제는 ‘1회용 NO 캠페인’으로 시민 참여를 유도한다. 사전 등록 시 개인 텀블러나 다회용 식기를 지참한 참가자에게 기념품 또는 지역상품권을 제공하고, 친환경 부스를 중심으로 체험형 콘텐츠를 기획해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단기적 실험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축제 정책으로 제도화되어야 하며, 이는 행정과 민간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다.

 축제의 미래는 ‘지속 가능성’에 있다

플라스틱 없는 축제는 단지 환경보호의 상징이 아니라, 축제가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해답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축제는 단순한 소비와 즐거움을 넘어, 시민 교육, 지역 가치, 지속 가능한 방식의 생활문화 구현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이제는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축제의 품격을 높이는 기준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지방축제들은 이미 그 길을 먼저 걷고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축제가 진짜로 살아남을 것이다.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행정이 전략적으로 지원하며, 축제가 사회적 실험장이 될 때,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도 살아남는 축제를 가질 수 있다. 더 이상 플라스틱 없는 축제는 ‘이상’이 아니라 ‘시작’이다.

 

 ‘플라스틱 없는 축제’, 운영의 벽을 넘어서 문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플라스틱 없는 축제를 운영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지역 축제의 대부분은 단기간, 야외, 다수의 임시 상점과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회용 포장재나 플라스틱 용기 없이 축제를 운영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예를 들어, 강원도의 한 여름 물축제는 다회용 컵 사용을 도입했지만, 세척 시스템과 회수 인력 확보에 실패해 축제 3일차부터는 일회용컵 사용으로 되돌아갔던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는 민관 협력 방식의 '리필 스테이션' 운영, 자발적 참여 가맹점 제도, 지역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리유저블 컵 세척소공공과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의 한 축제에서는 지역 청년단체와 사회적기업이 연합해, 축제 내 다회용기 수거-세척-재배포를 전담하고, 이 과정을 영상 콘텐츠로 시민에게 공개해 참여 동기를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플라스틱 없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운영 시스템뿐 아니라, 정책의 뒷받침도 절실하다. 경상남도는 2024년부터 ‘친환경 축제 인증제’를 시행하면서, 플라스틱 사용 자제 항목을 가점 요소로 반영하고 있고, 서울시는 축제 지원금 배정 기준에 ‘폐기물 자가 감축률’과 ‘다회용기 사용 비율’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지속적인 실천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센티브 구조로 작용하며, 축제 기획자들이 환경을 단지 '홍보' 요소가 아닌 운영상의 핵심 조건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결국 플라스틱 없는 축제는 단순한 ‘깨끗한 현장 만들기’를 넘어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어떤 문화를 선택할 것인가를 드러내는 행위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다는 결정은 결국 축제를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을 실험하는 장으로 전환하는 문화적 선택인 것이다. 앞으로 플라스틱 없는 축제가 한국 지역축제의 ‘기본값’이 되기 위해서는, 정책, 기술, 시민 감수성, 지역 운영 주체 간의 유기적 연결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