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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태풍으로 취소된 축제, 반복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 변화는?

매년 여름과 가을 사이, 한국은 한두 차례 이상 태풍의 직간접 영향을 받는다. 과거엔 주로 남부 해안에만 영향을 미쳤던 태풍이, 이제는 내륙 깊숙이까지 북상하며 지역축제의 운영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축제가 태풍으로 인해 전면 취소 또는 일부 축소되었고, 이에 따른 예산 낭비와 지역경제 손실이 반복되고 있다. 지자체는 이제 단순한 ‘날씨 운에 맡기는 축제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글에서는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축제 사례들을 분석하고, 이러한 사태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정책적·제도적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태풍으로 취소된 축제

 

 태풍으로 사라진 축제들 – 현실이 된 기후위기

2022년에는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 해변축제가 전면 취소되었고, 2023년에는 제6호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강릉 해양문화제, 통영 바다축제 등이 전격 중단됐다. 이처럼 태풍은 단순히 행사를 연기하는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재산 피해와 안전 사고 위험을 수반한다. 특히 해안가나 강변, 산지 인근에서 열리는 야외축제는 강풍, 해일, 낙석 등 복합 재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전남 고흥군은 2023년 고흥 별빛축제 개막 당일 폭우가 쏟아져 설치된 전기장비와 무대시설의 일부가 파손되는 사고를 겪었고, 예산의 약 30%가 손실되었다. 이러한 피해는 단지 '우연'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기후환경의 결과물이다. 태풍으로 인한 축제 취소는 문화 손실뿐만 아니라 지역상권 매출 감소, 관광객 이탈, 주민 피로도 증가라는 이중삼중의 피해로 이어진다.

 지자체의 대응 변화 – 취소보다 중요한 ‘사전 설계’

이전에는 축제가 태풍에 영향을 받으면 단순히 ‘취소’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자체들은 축제를 설계할 때부터 ‘재난 회피 구조’를 고려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시는 2023년 ‘부산바다축제’를 기획할 때, 태풍주의보 발령 시 자동 연기되는 ‘기상 트리거 시스템’을 적용했다. 기상청과 실시간 데이터 연동을 통해, 축제 진행 여부를 D-3 기준으로 자동 판단하고, 행사장 셋업 일정도 유동적으로 조정된다.

또한 전북 군산시는 해풍축제의 주 행사장을 기존의 해변에서 내륙공원으로 옮기고, 주요 콘텐츠를 실내 문화센터에 분산 배치했다. 이는 축제 자체의 ‘취소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일부 행사는 날씨에 상관없이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이런 대응은 단순히 당해 축제를 위한 ‘긴급 대응책’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장기적 기획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제도적 변화의 흐름 – 재해 대응 매뉴얼에서 법제화로

축제 취소 피해가 누적되자,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부터 ‘기상위험 기반 축제안전 가이드라인’을 표준안으로 전국 지자체에 배포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태풍, 폭염, 호우, 낙뢰 등 4대 기후 리스크에 따른 사전 대응 단계별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며,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행동지침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특정 강풍 단계 이상에서는 천막 철거 및 전기장비 전원 차단이 의무화된다.

더 나아가 2024년부터는 일부 지자체가 ‘축제 안전관리 조례’를 제정하며, 기상상황에 따라 축제 일정 및 장소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역행사 기상취소권’을 조례에 반영해, 시장 또는 담당 부서가 재해 위험 시 빠르게 행정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과거에는 조직 내 갈등이나 민원 우려로 인해 취소 판단이 늦어졌다면, 이제는 제도화된 절차로 축제의 안전성과 예산 효율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축제는 멈춰도, 지역은 살아야 한다 – 새로운 운영 철학이 필요하다

이제 축제 기획은 ‘태풍이 안 오길 바라는 일’이 아니라, ‘태풍이 와도 지역이 멈추지 않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축제는 단지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회복력(Resilience)을 측정하는 지표가 되었다. 반복되는 태풍 피해 속에서 지자체는 ‘축제를 취소할 수 있는 용기’와 ‘대체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는 실력’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축제가 취소되어도 축제 예산 일부를 지역상권 지원, 주민 프로그램 운영,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 관광객 유치 실패를 넘어, 장기적인 지역브랜드 유지 전략으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축제는 단순히 열고 닫는 이벤트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지역을 지켜내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제도로, 시스템으로 만드는 작업은 지금 이미 시작되고 있다.

반복되는 태풍 피해, 행정과 정책의 구조부터 바뀌고 있다

태풍으로 축제가 취소되었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단지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특히 중소 지자체의 경우, 축제 예산의 대부분이 계약 기반의 선집행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축제가 열리지 않더라도 집행된 비용은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실제로 일부 지역은 무대 설치, 장비 임대, 홍보 인쇄물 등 비용이 고스란히 손실로 남아, 다음 해 축제 예산까지 삭감되는 연쇄적 손실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최근 몇 년 사이 ‘축제 보험’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와 부산시는 일부 대규모 행사를 중심으로 자연재해로 인한 취소 시 비용 일부를 보전하는 보험 상품에 가입하고 있으며, 2024년부터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문화행사 리스크 대응 보험’ 시범 상품 개발이 추진 중이다.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축제를 기획한다는 것이 곧 재난 대응 능력을 함께 갖추는 것임을 의미하며, 축제 운영의 전제가 완전히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태풍 취소 대응을 위한 계약구조 개편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과거에는 ‘비가 와도 전액 지급’ 또는 ‘취소 시 위약금 없음’ 같은 단순 규정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계약서에 ‘재난에 따른 일정 조정 또는 축소 운영 시 비용 조정 합의 조항’을 사전에 삽입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이는 지출의 합리성을 확보하면서도, 사업자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유연한 행정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제도 변화는 단지 손실 보전의 기능을 넘어, 축제 기획과 운영 전반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기초 조건으로 작동한다. 강원도와 전남 일부 시군에서는 최근 ‘기후 리스크 대응 문화행사 매뉴얼’을 제정해, 태풍 경보 시 대응 단계별 조치와 예산 흐름, 계약 해지 기준까지 체계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대응을 넘어서 사전에 리스크를 설계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역문화 행정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결국 태풍으로 인한 축제 취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피해가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정책과 제도의 미비 때문이다. 제도 변화는 피해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축제를 지속 가능한 지역 자산으로 자리매김시키는 문화적 안전망이 된다. 이제는 ‘기후 재난이 오면 포기하는 축제’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신뢰와 기능을 지켜내는 축제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