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름은 더 이상 단순히 덥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 특보, 35도를 넘나드는 체감온도, 그리고 장기간 지속되는 열대야 현상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지역에서 개최되는 여름 축제들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에는 7~8월이 지역축제의 전성기였지만, 이제는 무더위로 인한 안전사고, 참가자 감소, 운영비 증가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글은 실제 여름철 축제를 운영하는 지자체들의 대응 전략과 축제 구조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폭염 속 지역축제가 생존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한다.
여름 축제, 더 이상은 ‘사람 모으는 축제’가 아니다
기존의 여름 지역축제는 주민과 관광객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즐기는 ‘밀집형’ 프로그램이 중심이었다. 물축제, 불꽃놀이, 야외 공연, 푸드 트럭 행사 등은 사람들의 체류시간이 곧 성공의 척도였지만, 현재는 그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다. 기상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7~8월 평균기온은 30도를 넘었으며, 2024년에는 일부 지역에서 40도 가까운 폭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야외 축제에 참여하는 인원 수 자체가 급감하고 있으며, 특히 어린이와 노년층은 거의 외출을 자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자체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참여자 수’보다 ‘체류자 안전’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충남 보령시는 2023년 머드축제 일정 중 야외 프로그램 일부를 폐지하거나 시간대를 저녁으로 변경했고, 대구시는 낮 행사 전면 취소와 야간 공연 집중 편성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축제는 더 이상 ‘인파를 끌어모으는 일’이 아니라, ‘기후 리스크를 줄이는 일’로 변화하고 있다.
쿨링존과 쉼터, 폭염 속 생존의 기본 장치로 떠오르다
지자체는 폭염 대응 장치로 쿨링존 설치를 확대하고 있다. 쿨링존이란, 천막·안개분사기·냉풍기 등이 설치된 임시 냉방 공간으로, 축제 참가자의 휴식과 회복을 위한 공간이다. 2024년 강원도 삼척 해변축제에서는 3개 구역에 대형 냉방 텐트와 이동식 냉풍차량이 도입되었고, 이는 실제로 체류시간을 20분 이상 늘리는 효과를 보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 안전을 위한 워터 미스트 분사기와 냉수 무상 제공소, QR 코드 기반 응급출동 시스템도 곳곳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 영등포구는 “축제 현장에서 온열질환자가 발생하면, 5분 내 응급차 도착”을 원칙으로 설정하고 인근 보건소와 연계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대응은 단순히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 지역축제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로그램의 야간화, 실내화가 가져온 구조 변화
폭염의 영향으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화는 바로 프로그램 시간과 장소의 재편이다. 지자체들은 야외 낮 행사보다 야간 중심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으며, 실내 문화시설을 축제 장소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전북 남원시는 2023년 판소리 여름축제를 전통시장 야외 무대 대신 시립미술관 실내 공연장으로 이동하여 개최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편하게 참여할 수 있었고, 무더위로 인한 불참률도 대폭 줄었다.
또한, 실내형 전시와 영상 콘텐츠 체험 공간은 축제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에어컨이 설치된 전시관에서 지역 전통 문화를 체험하거나, 지역 특산품을 온라인 중계로 판매하는 프로그램도 도입되며,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다각화 전략이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 대응이 아닌, 향후 모든 축제가 가져가야 할 기후대응형 축제모델의 표준이 되고 있다.
여름축제의 재정의 – 더 이상 ‘계절 축제’가 아닌 ‘기후 대응형 문화 행사’
폭염이라는 기후 재난 속에서 여름 축제는 단순한 관광 유치 행사가 아닌, 지역 사회의 회복력(Resilience)을 실험하는 문화적 장치가 되고 있다. 지자체는 이제 축제의 ‘흥행 여부’보다는 지속 가능성, 기후 적응력, 시민 안전성을 중심으로 전략을 세워야 하는 시대에 진입했다. 축제는 그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계절성을 상징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기후위기 앞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바뀔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제 축제는 ‘여름이니까 하는 행사’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가능한 문화적 연결’이어야 한다. AI 기반 날씨 예측을 통한 일정 조정, 실내/야간 프로그램 중심의 구조 재편, 시민 안전을 중심에 둔 정책 연계는 앞으로 모든 지역축제가 도입해야 할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축제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축제는 단지 ‘즐거움’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함께 버티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넘어, 여름축제는 변화를 주도하는 실험장이 된다
여름축제가 단지 폭염을 ‘견디는 방식’으로만 운영된다면, 그것은 점점 더 제한적이고 피로한 형태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축제를 매개로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감각과 행동을 확산시키는 전환의 전략이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축제를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기후 행동을 일상화하는 ‘행동 플랫폼’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경기도 남양주의 ‘에코 여름문화제’는 쿨링존 설치와 함께 참여자에게 다회용 컵을 대여하고, ‘제로 플라스틱 인증제’를 도입해 스탬프를 모으면 굿즈로 교환하는 방식의 기후 실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 축제는 더위를 피하는 공간을 넘어, 더위의 원인이 된 탄소 소비를 줄이자는 메시지를 중심에 놓은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축제가 단지 ‘쉬는 곳’이 아닌, ‘배우고 실천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 기반 축제는 폭염을 피해 실내 공간 또는 저녁 시간대 중심의 프로그램 구성으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낮은 조도, 조용한 분위기, 시각·청각 중심의 깊이 있는 감성 콘텐츠가 도입되는 계기도 만들었다. 이는 기존의 시끌벅적한 야외 중심 축제와는 다른 정서적 공간을 창출하고 있으며, 시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더 즐겁고 편안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기후위기를 계기로 축제 콘텐츠의 다양성과 깊이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름 축제가 이제 ‘날씨의 피해자’가 아니라, 기후위기 속에서 먼저 바뀌는 사회적 실험의 장이라는 점이다. 축제는 단시간에 수많은 시민이 모이는 공간인 만큼, 탄소배출 감축 캠페인, 친환경 제품 체험, 도시농업 교육, 환경 시민강좌 등 기후 행동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유력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실험을 통해 지자체는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얻고, 시민은 환경 행동에 대한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
이제 여름 지역축제는 단지 살아남기 위한 대안을 넘어, 앞으로 다가올 더 거센 기후환경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미리 연습하는 공공 문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는 축제의 존재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작업이며, 여름 축제를 지키는 것이 단지 전통의 유지가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는 선택이 되는 이유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역축제에 ‘기후 탄력성’이 필요한 이유 – 정책과 현실 사이 (3) | 2025.06.26 |
---|---|
태풍으로 취소된 축제, 반복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 변화는? (2) | 2025.06.26 |
벚꽃축제, 개화시기 변화에 따른 지자체의 대응 전략 분석 (1) | 2025.06.25 |
강릉 단오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0) | 2025.06.25 |
플라스틱 없는 축제 만들기, 지방축제에서 먼저 시작한 실험 (1) | 2025.06.25 |
기후위기로 사라진 지역축제 TOP5 – 그리고 부활 시도들 (0) | 2025.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