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는 오랫동안 계절성과 함께 발전해 왔다. 벚꽃은 봄을 알리고, 단풍은 가을을 물들이며, 얼음 낚시는 겨울을 대표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계절에 따라 열리던 축제의 시간과 형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앞당겨진 개화시기, 늦춰진 수확기, 줄어든 강설량 등은 축제 기획자들에게 일정 조정 이상의 복잡한 과제를 안기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로 무너지고 있는 지역축제의 계절성과 그로 인한 정체성 혼란,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속 가능한 축제 기획 방향을 살펴본다.
계절성과 함께했던 축제, 지금은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의 대부분 지역축제는 계절성에 강하게 의존해왔다. 강릉 단오제는 초여름을 알리고, 화천 산천어축제는 겨울 얼음낚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봄이면 벚꽃축제가 전국을 수놓고, 가을이면 억새축제나 국화축제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이처럼 지역축제는 계절을 축제의 테마로 설정하고, 그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러한 축제 구조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2023년 강원도 지역은 겨울철 기온이 예년보다 3도 이상 상승하면서 화천 산천어축제가 4년 연속 취소되었고, 봄에는 벚꽃이 예상보다 10일 이상 빠르게 피어 축제 시기와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계절과 자연의 리듬에 맞춰 정체성을 형성해온 지역축제들은 이제 그 ‘기반’ 자체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예측 불가능해지면서 축제의 정체성도 흔들린다
계절성 축제는 그 자체로 지역 브랜드의 일부이자, 관광 콘텐츠의 핵심이 되어왔다. 예를 들어, ‘진해 벚꽃축제’는 ‘봄의 시작’을 상징했고, ‘태안 빛축제’는 겨울철 야경 명소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계절 자체가 더 이상 안정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면서, 지역은 고유의 축제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지자체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계절 연계’를 약화하고, 새로운 테마 중심의 기획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 함평은 국화 개화 시기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생태예술과 함께하는 꽃문화축제’로 축제 방향을 바꾸었으며, 구체적인 꽃 종류보다는 체험, 전시, 예술 콘텐츠 중심의 구성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변화는 정체성의 상실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생존 전략이자 진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계절성이 사라진 시대, 축제는 무엇으로 지역을 설명할 것인가?
계절성의 해체는 축제의 운영방식만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질문을 던진다. 지역은 더 이상 "봄엔 벚꽃, 가을엔 단풍"이라는 공식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지역 고유의 문화, 주민 삶의 방식, 역사적 기억 등을 중심으로 축제를 설계해야 한다.
충북 영동군은 ‘포도축제’가 수확시기 지연으로 운영 차질을 겪자, ‘와인과 음악이 있는 생활문화축제’로 방향을 전환해 지역의 와인 산업, 청년 창업, 음악 교육 프로그램 등을 함께 엮은 복합형 축제를 구성했다. 이러한 방식은 ‘포도’라는 계절성 작물 대신, 지역의 산업과 정체성을 중심에 둔 기획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축제는 더 이상 자연현상에만 기대는 행사가 아니라, 지역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아내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계절이 예측 불가능해진 시대, 축제를 설계할 때는 더 이상 ‘기후 조건을 고려’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기후에 흔들리지 않는 주제 구성, 탄력적인 일정 운영, 실내외 연계 기획, 탄소배출 감축 구조 등 다층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축제를 단지 '열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문화 전략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환경에 적응하는 축제는 존재할 수 있다. 핵심은, 계절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지역이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의 축제는 "봄이 오면 여는 행사"가 아니라, "이 지역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가를 보여주는 자리"로 기능해야 한다. 계절은 바뀌어도,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문화는 유지될 수 있다. 그 연결고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 축제의 과제이자 기회다.
기후위기 속 계절성이 무너진 지역축제, 정체성은 어디로?
기후위기로 인해 계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봄꽃은 겨울에 피고, 가을은 태풍으로 사라지고, 여름은 도심 밖으로 도망치는 계절이 되었다. 이 변화는 단지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축제가 지닌 고유한 ‘계절 상징성’을 뿌리째 흔드는 위기다.
과거 지역축제는 계절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물놀이, 가을에는 수확, 겨울에는 얼음과 불빛이라는 상징 구조는 관광객의 기억과 축제의 고유 브랜드를 동시에 형성해왔다. 그러나 기후 이상 현상으로 인해 계절과 실제 기후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축제의 타이밍과 콘텐츠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일부 지역은 계절의 이름이 아닌, 기후에 맞춘 생태 변화 중심의 테마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 완도군은 ‘봄바다축제’를 ‘바다감각축제’로 이름을 바꾸고, 해류 흐름과 플랑크톤 개화 시기에 맞춘 콘텐츠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이처럼 계절보다는 생태 리듬, 기후 데이터, 자연 주기와 연동된 기획 전략은 계절 축제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또 다른 방식이 되고 있다.
또한 일부 지자체는 정체성 자체를 ‘계절’이 아니라 ‘기후 적응의 상징’으로 전환하고 있다. 예컨대, “한겨울에도 피는 꽃”, “폭염 속에서 나누는 물의 철학” 같은 주제는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축제를 단순히 계절의 반복이 아닌, 환경 변화에 응답하는 사회문화적 메시지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계절이 흔들려도, 축제의 정체성은 반드시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지역의 선택이다. 계절성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라, 지역이 만들어내는 해석과 기획의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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