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매년 수백 개의 지역축제가 열리는 나라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핵심 주제로 내세운 축제는 아직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자체와 시민단체는 축제를 단지 즐기는 자리가 아닌, 기후위기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공론의 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핵심 테마로 삼은 국내의 이색 축제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시민을 교육하고,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축제는 더 이상 소모적인 문화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탄소 없는 문화’를 실험하는 축제들 – 실천이 중심이 된 현장
대표적인 예로 서울 성북구의 ‘제로웨이스트 문화제’를 들 수 있다. 이 축제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슬로건 아래, 모든 행사 구성에 탄소 배출 최소화를 목표로 설계되었다. 참가자는 입장부터 1회용품을 지참하지 않도록 유도되며, 다회용기 대여소, 전기차 이동식 무대, 손발로 작동하는 체험존 등이 설치된다. 특히 ‘탄소발자국 계산기’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해, 시민이 자신의 일상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강원도 원주시는 2023년부터 ‘기후예술제’를 시범적으로 개최했다. 이 축제는 지역 예술가들과 환경 전문가가 협력해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설치미술, 연극, 영상 콘텐츠를 선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축제 전 기간 동안 탄소 저감 목표를 수립하고 실시간 공개했다는 것이다. 예술과 데이터를 연결한 이 축제는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변화를 요청하는 축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어린이와 가족 중심의 환경 교육형 축제도 주목받는다
기후위기 대응 축제가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기획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는 2023년 ‘지구를 살리는 마을잔치’를 개최하며, 초등학생 대상 기후 교실과 놀이형 워크숍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아이들은 마을 곳곳에 설치된 환경 퀴즈 부스를 돌며, ‘일상 속 온실가스 줄이기’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었으며, 참가자 전원에게는 지역화폐로 교환 가능한 ‘지구코인’을 지급해 실질적인 보상도 제공했다.
부산 사상구는 ‘기후 피크닉’을 주제로 도심 속 친환경 캠핑 체험 축제를 열었으며, 텐트 대여부터 음식 조리까지 전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최소화하고, 전력은 태양광으로 공급했다. 이런 축제는 단순히 ‘보여주기’가 아니라, 가족 단위의 실제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후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장치가 된다. 교육형 축제는 특히 지방 도시에서 자녀 교육과 관광을 동시에 해결하는 패키지형 콘텐츠로도 발전하고 있다.
환경운동에서 확장된 시민 주도형 축제도 있다
기후위기 대응 축제 중에서는 시민단체 주도로 만들어진 비공식형 축제도 독특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청주시민 기후행동네트워크가 주관한 ‘기후평화축제’가 있다. 이 행사는 예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플라스틱 없는 먹거리 마켓, 기후캠페인 퍼레이드, 동네 생태지도 만들기 등을 기획하며 축제를 구성한다. 상업적 목적보다 시민 주도형 기획과 자율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제주도에서는 매년 10월, 기후행동주간에 맞춰 ‘녹색생활 축제’가 열린다. 제주도민은 이 기간에 자전거 출퇴근 챌린지, 에너지 절약 경연, 업사이클 마켓 등을 통해 지역 내 탄소감축 실천 캠페인에 참여한다. 이런 자발적 축제는 형식은 작지만, 지역공동체의 연결과 참여율 측면에서 매우 높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주제를 담은 축제는 꼭 화려하지 않아도, 메시지가 분명하고 실행력이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진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달라야 한다
이제 축제는 단순한 관광 콘텐츠가 아니라, 지역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축제는 일시적이거나 유행처럼 끝나서는 안 되며, 도시의 철학, 시민의 의식 수준, 정책의 진정성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 시민은 축제를 통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지구의 현실’을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변화’를 배우게 된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이색 축제는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 다만, 그 중심엔 반드시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 측정 가능한 목표, 주민 참여 구조가 있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시도를 더 많이 발굴하고, 보조금과 정책으로 후원해야 하며, 시민사회와 예술계는 보다 창의적인 언어로 이 메시지를 전파해야 한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은 모두의 문제이며, 축제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이제 축제의 테마가 아니라 사회적 행동 플랫폼이 된다
기후위기를 테마로 한 축제들은 점점 더 ‘캠페인성 이벤트’에서 벗어나,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가 직접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참여형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환경을 생각하자’는 추상적 메시지 전달을 넘어서, 일상 속 행동 변화와 지역사회 문화로의 확산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으로 서울 마포구에서 개최된 ‘제로서울 페스티벌’은 전통적인 축제형식이 아닌 도심 걷기, 에너지 체험, 기후시민 토론회, 중고장터 등이 결합된 형태로 진행되며, 참가자에게는 탄소 절감 인증 스탬프를 제공해 실질적인 행동을 유도했다. 특히 행사 운영진은 모든 부스 운영 자료를 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분석해 축제 종료 후에 공개함으로써, 단순한 홍보가 아닌 투명한 실행성과 기반의 기후문화 실천 사례로 평가받았다.
국외 사례 중에서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C40 도시기후문화제’가 주목된다. 이 축제는 도시 정부, 예술가, 기후과학자, 디자이너, 시민단체가 협업해 도시 공간 전체를 기후위기 대응 메시지의 ‘무대’로 전환한다. 버려진 공터에서는 ‘기후불안’ 주제의 즉흥 연극이 열리고, 시청 앞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탄소중립 선언 깃발’을 제작해 전시하는 퍼포먼스도 열린다. 이처럼 기후축제는 공공 공간과 예술 콘텐츠가 시민의 행동을 촉진하는 사회적 실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청년과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소규모 이색 축제도 늘어나고 있다. 광주의 ‘지구청년마켓’은 단순한 친환경 플리마켓이 아니라, 참가 청년 셀러들이 사전 기후워크숍을 이수하고, 각 부스마다 기후 관련 실천 슬로건과 개인 행동약속을 부착하도록 운영된다. 이 구조는 단순 판매를 넘어, 기후 행동의 생활화와 사회적 확산을 설계하는 축제 모델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축제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바로 ‘행사’를 넘어서 ‘기후 행동 플랫폼’으로 기능하려는 목적성이다. 이제 축제는 단지 즐기는 자리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설계하고 실험하는 거대한 퍼포먼스가 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이색 축제는 앞으로 지역, 세대, 문화, 기술이 융합된 복합적 기획으로 더욱 다양하게 확장될 것이며, 이는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문화의 구조를 바꾸는 장기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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