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지역축제의 운영 방식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날씨 하나가 지자체의 축제 예산 집행 구조 전반을 흔들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태풍, 폭염, 집중호우, 이상고온 등 날씨 변수로 인해 축제가 갑작스럽게 취소되거나 일정이 변경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지자체는 예산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집행할 수 있을지를 놓고 행정적 혼란과 회계적 리스크에 빠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날씨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축제예산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자체의 새로운 예산 운영 전략을 살펴본다.
기후 변수 앞에 멈춰 선 예산 – 취소되면 돈도 멈춘다?
한국의 지역축제는 대개 당해 연도 예산을 기반으로 정해진 일정에 맞춰 예산을 집행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정해진 일정’이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23년 전남 여수의 해양문화축제는 태풍 북상으로 개막 하루 전 전면 취소되었고, 이로 인해 이미 지출된 홍보비·무대설치비는 정산 처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예산의 대부분이 사전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선집행 구조'이기 때문에, 날씨로 인해 축제가 열리지 않더라도 지출된 비용은 환수나 보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경북 문경시의 한 관계자는 “축제 전 사전 발주한 천막과 음향 장비 비용을 회수하지 못해, 차기 연도 예산에서 감액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날씨가 예산 운영의 변수일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행정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자체 예산 구조와 행정 절차, 날씨에 너무 ‘고정적’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대부분 회계법상 연 단위 예산 구조를 따른다. 이는 곧 해당 연도 안에 예산을 편성·집행·정산해야 하며, 불용(사용하지 못한 예산)은 반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날씨로 인해 축제가 연기되거나 예비일로 옮겨지면, 이 같은 고정된 회계 일정과 충돌하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가을 태풍으로 인해 10월 말로 연기된 축제가 11월에 개최된다면, 회계 마감일을 넘기지 않도록 빠르게 정산을 강행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또한 일부 지자체는 아직도 ‘행사 취소 시 예산 전면 환수’ 규정을 갖고 있어, 유연한 재편성과 재배분이 어렵다. 이런 구조는 결국 ‘날씨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 축제를 취소해도 예산은 못 쓴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행정적 위축과 과도한 책임 회피 분위기를 초래한다. 이처럼 지자체 예산 체계는 날씨와 같은 비정형 변수에 지나치게 경직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후 리스크 대응형 예산 설계’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예산은 탄력적 구조로의 전환이 필수다. 우선적으로는 예산 내에 '기상 변수 대응 항목'을 독립 계정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지자체는 2024년부터 ‘기상 연기 대응비’, ‘축제 예비일 집행비’를 별도 항목으로 편성해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축제 일정 변경 시에도 예산 집행의 합법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행정안전부는 2023년부터 ‘기후위기 대응 축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축제 평가 기준에 예산 유연성 및 리스크 관리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돈을 잘 썼는가’가 아니라, ‘기후에 따른 합리적 예산 운영을 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일부 지자체는 다년도 예산제도(중기지출계획)를 축제에 적용해, 특정 해에 축제를 개최하지 못해도 차년도에 이월 가능한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날씨에 흔들리지 않는 축제를 위한 행정 철학의 변화
예산을 썼는가 못 썼는가만 따지는 회계주의적 접근으로는,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지자체는 이제 ‘날씨 변수’를 단순한 돌발 상황이 아닌 축제 기획과 예산 설계의 기본값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계기준의 완화나 유예, 사전계약 구조의 유연화, 민간 협력 예산 구조 강화 등 정책적·제도적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축제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지역 가치와 시민 참여의 의미가 날씨 때문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축제의 성공은 단순히 ‘예산을 집행했는가’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속에서도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지키고 연결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결국 날씨에 흔들리지 않는 축제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날씨에 흔들리지 않는 예산 구조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날씨 따라 움직이는 축제 예산 – 지자체 예산 운영의 새로운 문제
기후위기로 인해 축제 일정이 잦은 변동을 겪으면서, 지자체의 예산 운영이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대부분의 축제 예산이 연초에 한 번 편성되어, 일정에 맞춰 순차적으로 집행되었지만, 최근에는 폭우, 폭염, 태풍 등으로 행사 자체가 축소·연기·취소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불용 예산 증가, 정산 지연, 보조금 회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는 ‘탄력 예산제’를 실험 중이다. 이는 일정이 불확정적인 축제나 기후변화 영향을 크게 받는 야외행사에 대해, 집행 예산을 탄력적으로 분할 배정하고, 행사 실행 여부에 따라 2차 집행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경기 북부의 한 도시에서는 예비 일정 포함 행사 기획안 제출 시에만 보조금 사전 지급을 허용하고, 미집행 시 정산 절차를 간소화해 행정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 항목을 예산 항목에 포함시키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는 2024년부터 ‘기후변동 리스크 대응 비용’이라는 항목을 별도 계상해, 행사 일정 조정 시 발생하는 임시 인력 재편, 장소 변경 비용 등을 감안한 예비비 성격의 예산을 공식화했다. 이러한 조치는 축제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 예산의 유연성을 제도화하는 선례로 주목된다.
결국 축제 예산은 더 이상 고정적인 연간 계획서가 아니라, 날씨에 따라 조건부로 움직이는 유동 예산 시스템으로 변화해야 한다. 기후 리스크가 일상이 된 지금, 축제 행정 역시 위기 상황을 포함한 예산 설계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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