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축제 예술 콘텐츠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위기의 시대,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후위기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보고서나 과학자의 발표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여름밤의 거리에서 숨 막히는 더위로, 갑작스러운 폭우로, 도로 옆 무너진 나무와 수확을 포기한 논밭으로, 지역 곳곳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위기는 단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 감각, 삶의 질서까지 변화시키는 전방위적 위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위기 속에서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예술은 여전히 ‘보는 것’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가? 지역 축제는 여전히 무대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박수를 받는 방식으로만 기획되어야 하는가?
기후위기는 단지 콘텐츠의 주제가 되는 것을 넘어서, 예술의 태도와 형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특히 지역 축제에서 예술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며, 지역의 언어를 만드는 창구이기 때문에 이 변화는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축제 예술 콘텐츠는 대부분 관람형, 소비형, 이벤트형으로 구성되어 왔다. 전통 공연, 유명 가수 초청, 레이저쇼, 불꽃놀이, 플래시몹 등은 대중의 흥미를 끌고, 일시적으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그 이후 무엇을 남겼는지는 모호하다. 기후위기 앞에서 이런 형식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에너지를 많이 쓰고, 탄소를 과다 배출하고, 잠깐의 시각적 자극만 남긴 콘텐츠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지역의 전환을 돕지도 못한다.
이제 우리는 예술 콘텐츠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물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에서 예술은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감각하고 사유하고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축제의 예술 콘텐츠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짚고, 어떤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제안하고자 한다.
기존 축제 콘텐츠는 기후위기와 충돌한다
우선 지금까지의 지역축제 예술 콘텐츠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 저감 의식 부재다. 많은 지역축제는 야간 무대 조명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메인 행사는 대형 전광판, 조명, 음향, 드론쇼, 불꽃놀이 등 고에너지 소비 장치를 중심으로 기획된다. 이 과정에서 디젤 발전기 사용, 1회용 전기설비 조립·해체, 각종 합성 자재와 구조물이 동원된다. 이러한 형식은 시각적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으나, 온실가스와 폐기물, 소음과 광공해를 낳는 주요 원인이 되며, 기후위기 시대에 점점 부적절한 방식으로 간주된다.
또한 콘텐츠의 메시지도 문제다. 많은 공연이나 시각 콘텐츠는 여전히 ‘자연을 아름답게 소비하는’ 형식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계절의 축복”, “가을의 풍요”, “봄의 꽃길” 같은 표제가 붙은 프로그램은 자연을 감상 대상으로만 다룬다. 하지만 기후위기 앞에서 자연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위험과 회복, 책임의 관계로 새롭게 다뤄져야 한다. 예술이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지 않으면, 축제는 오히려 위기를 미화하거나 현실을 은폐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이 시민과의 관계에서 일방향적인 소모형 구조에 머무는 한, 축제는 지역의 전환에 기여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시민이 예술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삶을 감각하고 행동을 바꾸는 구조다. 이것은 단지 예술가의 책임이 아니라, 축제 기획자와 행정이 함께 풀어야 할 구조의 문제다.
예술 콘텐츠는 ‘감각의 전환 장치’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예술은 무엇보다 감각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장치여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이란,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자극이 아니라, ‘지금 이 장소가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내 삶이 그 위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내가 지금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하는 통합적인 경험이다. 예컨대, 어느 마을 축제에서 가뭄과 물 부족의 위기를 시각화하기 위해, 축제장 입구에 ‘어제 마을에서 쓴 물의 총량’을 전광판으로 보여주고, 물 없이 요리한 로컬 음식을 시식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면, 이는 단순한 시청각 콘텐츠가 아니라 삶의 감각을 전환시키는 예술적 실천이 된다.
또한 예술은 ‘참여’를 통해 감각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 기후변화 데이터를 활용한 지역 기후 지도 만들기, 기후 상실감(grief)을 다루는 지역 주민의 구술극, 폐기물로 만든 지역 상징물 전시, 기후위기 속 지역의 소리를 담은 사운드워크 프로그램 등은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콘텐츠가 아니라, 지역민이 직접 참여하고 몸으로 익히는 감각적 학습의 방식이다. 이처럼 예술 콘텐츠가 ‘함께 만드는 경험’이 될 때, 사람들은 단지 축제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축제를 통해 지역을 재인식하고 스스로의 실천을 시작하게 된다.
기후위기 앞에서 예술은 전시의 언어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 감정의 언어, 질문의 언어로 작동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전환은 기술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이며, 시민의 감정, 감각, 태도를 변화시키는 방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오직 예술을 통해 촉발될 수 있다.
기획과 행정은 예술의 전환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예술 콘텐츠가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게 전환되려면, 기획자의 의지뿐 아니라 예산과 구조, 정책적 뒷받침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우선 보조금 심사 기준에 ‘환경 친화적 콘텐츠’ 항목을 명확히 포함해야 한다. 현재는 대부분 ‘창의성’, ‘문화성’, ‘참신함’ 같은 추상적 기준이 중심이며, 실질적인 환경성과나 시민 참여 정도는 부수적인 평가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제는 탄소배출 최소화 콘텐츠, 생태적 메시지의 명확성, 시민 감각 훈련 요소 등도 평가 항목으로 포함시켜야 하며, 이에 따라 탄소 감축형 예술 콘텐츠에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공연이나 시각예술 콘텐츠의 제작과정에 있어서도 탄소 회계 기반 가이드라인을 적용해야 한다. 예컨대 무대 설치에 사용되는 자재, 조명과 음향 시스템의 에너지 소비량, 설치와 해체를 위한 물류 이동거리 등을 사전에 제출하도록 하고, 저탄소 운영을 설계한 기획안에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지속가능 예술 콘텐츠 인증’ 제도를 도입할 수 있으며, 이를 문화재단과 축제 심사에 연계하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콘텐츠 선정과정에서 ‘지역민과의 협업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역의 문제를 다루되 외부 기획자만의 시선으로 해석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기억과 언어, 감정을 동반하는 협업 구조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콘텐츠는 표피적인 메시지를 넘어서 정서적 공감과 실천적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 지역 축제가 예술을 통해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이제는 예술이 지역을 바꾸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더 이상 잠시의 환호와 잊혀지는 기억을 남기는 이벤트로 존재할 수 없다. 급변하는 계절과 불확실한 날씨, 그리고 공동체의 생존 문제 앞에서 축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지 사람을 모으는 무대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를 감각하고, 스스로의 삶을 다시 질문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하며, 그 변화의 중심에 예술이 있어야 한다. 예술은 원래 메시지를 전하고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전달하거나 공감을 유도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예술은 사람들의 감각을 바꾸고,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보게 하며, 나와 지역, 자연, 공동체 사이에 맺어진 복잡한 관계를 인식하도록 이끄는 ‘감각의 재구성 장치’가 되어야 한다. 축제에서의 예술 콘텐츠는 단지 시청각적 자극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공간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학습이자 실천의 경험이어야 하며, 그 경험은 오직 참여와 공동의 감정 속에서 완성된다. 축제는 지역의 언어와 기억, 현실을 담는 그릇이고, 예술은 그 그릇에 생기를 불어넣는 도구이기에, 기획자는 단지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의 흐름을 설계하는 감정의 편집자여야 하고, 행정은 단지 보조금을 배분하는 기관이 아니라, 이러한 전환이 가능하도록 문화적 조건을 만드는 공동 설계자여야 한다. 우리가 지금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전환 앞에서 축제를 계속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축제가 단지 ‘계속되는 것’을 넘어 지역의 생존 전략으로 작동하길 바란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바로 축제 속 예술의 태도다. 그 태도가 달라질 때, 비로소 우리는 위기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감각하며, 변화 앞에 선 지역의 모습을 함께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야 우리는 말할 수 있다 — 이 축제는 단지 보여주는 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지역의 감각을 키우는 문화적 실천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