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기후위기와 지역 고령화가 겹친 축제 현장, 이중 위기를 어떻게 넘을까?

세노비스 2025. 7. 18. 09:00

기후와 인구, 두 개의 위기가 한 마을을 동시에 덮칠 때

축제는 공동체의 에너지에서 시작된다. 한 마을이 제철의 변화를 기념하고, 수확을 나누고, 오래된 신화를 재현하며, 새로운 세대를 초대하던 지역축제는 본래 공동체의 가장 살아 있는 문화적 표현이자 지역성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많은 마을에서 축제를 열기 위해 필요한 공동체의 동력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극심해진 농산어촌 지역에서는 축제를 함께 준비할 사람이 없고, 관람객보다 봉사자가 부족하며, 지역주민보다 외지인 위주로 행사장이 채워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기후위기로 인한 일정 변동, 재난 취소, 수확 실패까지 겹치며, 이제는 “축제를 계속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당연한 물음이 되었다.

문제는 이 두 위기가 서로 겹쳐서 작용할 때 발생하는 복합성이다. 예컨대 기후변화로 벼가 익지 않아 벼베기 행사를 미뤄야 하는데, 지역의 고령자 인력은 장시간 대기나 재배치에 적응하기 어렵고, 장비나 소통 시스템도 제한적이다. 또는 집중호우로 무대 설치가 지연되었는데, 마을 자원봉사자는 평일 동원이 어렵고, 젊은 인력은 타지로 빠져나가 축제의 주체가 사라진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불확실성과 고령화의 물리적 제약이 동시에 발생하면, 축제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능력은 급격히 저하되며, 이는 축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인 위험요인이 된다.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와 ‘지역 고령화’라는 두 축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역에서,
축제가 실제로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지,
이중위기 속에서도 축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어떤 문화적·정책적 재설계가 필요한지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와 지역 고령화

 고령화된 지역에서 기후위기 축제 대응은 왜 더 어려운가?

지역 고령화는 단순히 인구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기획과 실행의 물리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농촌형 축제의 주요 기획자는 지역 이장, 부녀회, 노인회 등의 중장년층이며, 운영 인력은 60대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열정과 헌신이 있지만, 기후위기 앞에서 필요한 ‘빠른 대응’이나 ‘현장 구조 전환’, ‘기술 기반의 조정’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축제 당일 갑작스러운 폭염이 발생했을 때, 그늘막 이동, 음수대 분산, 무대 시간 조정, 응급대처 소통 등은 물리적 체력과 디지털 감각을 요구하는데, 이 과업을 담당할 청년층이 부재한 구조에서는 대응이 극도로 느려지고 행정 부담이 과중된다.

또한 고령화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소통 지체를 동반한다. 기상청의 기후예측 정보나 재난 경보는 디지털 기반으로 전달되며, 대응 매뉴얼 역시 온라인 공유가 전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령 중심의 축제 공동체에서는 스마트폰을 통한 긴급대응 전달, 실시간 일정 변경, QR기반 입장 시스템 등에 대한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 결과, 마을 중심의 기획이 위축되고 외부 용역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축제가 재편되는데, 이 경우 축제의 ‘지역성’은 더욱 약화된다. 즉, 기후위기의 변화가 발생했을 때, 고령화된 마을은 대응 역량이 가장 낮은 동시에,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인력 배치나 홍보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축제라는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마을의 생애주기와 자연의 리듬 사이에서 조화롭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실패를 보여준다. 더 이상 “누군가 해주겠지”라는 방식으로는 축제가 유지되지 않는다. 이중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지역축제의 근본적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축제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이중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고령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단지 한쪽 문제만을 해결해서는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 기획 구조와 운영 방식 모두에서 ‘이중 전환(double transition)’을 추진해야 한다. 첫 번째 전환은 세대 간 축제 주체 구조의 전환이다. 즉, 고령자 중심의 마을 기획 체계를 유지하되, 그것을 보완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청년-시민 협력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역 내 청년 예술가, 대학생, 기후활동가, 도시거주자 등을 마을축제 공동기획자로 초청해 이중 기획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이 있다. 이 구조는 ‘마을의 정서와 리듬’을 고령자가 유지하면서도, 기술과 플랫폼, 위기 대응은 청년이 담당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분산시키는 모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축제 협동 기획단’ 또는 ‘기후적응형 공동 기획자 제도’ 같은 새로운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전환은 운영과 일정을 중심으로 한 유연화 구조의 도입이다. 지금까지의 축제는 날짜가 고정되고 운영이 획일적인 구조였지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자연의 흐름과 마을의 인력 조건을 고려해 ‘열린 시기’와 ‘가변 운영’을 전제로 한 유연한 설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10월 셋째 주에 고정되던 마을 국화축제를, 국화 개화상태와 마을 노동력 확보 상황에 따라 ‘10월 중 2주 이내 유동적 개최’로 변경하고, 이에 따라 모든 예산, 홍보, 일정, 계약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행정 운영 프로토콜을 설계하는 것이다. 또한 폭염 또는 우천 시에는 무대를 최소화하거나 디지털 콘텐츠로 대체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온라인 병행형 운영 매뉴얼’을 사전에 마련해두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전환은 단지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가진 생애 조건과 생태 조건을 동시에 존중하는 설계로의 전환이다. 사람의 나이와 자연의 계절, 그 둘 모두를 무시하지 않고 함께 작동시키는 축제야말로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축제가 될 수 있다.

정책과 제도가 바뀌어야 지역은 반응할 수 있다

이중 위기를 이중 전환으로 극복하려면, 현장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책과 제도의 틀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첫째, 축제 보조금 사업에 ‘기후위기+고령화 복합 대응형 축제’라는 항목을 신설해야 한다. 현재의 보조금 심사 기준은 대체로 콘텐츠의 우수성, 경제효과, 홍보력 등으로 수렴되어 있지만, 이제는 지역의 고령 인구 비율과 기후 취약성 지수를 고려해 ‘기후사회적 복합위험 대응 항목’을 평가기준에 포함해야 한다. 이 항목은 예산 규모 산정에서도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하며, 실제로 대응 체계가 구축된 축제는 추가 가점 및 연속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마을단위 축제 운영에 있어서 외부기획자 연계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후감수성과 기술 기획 능력을 갖춘 청년기획자 혹은 전문가를 지역마을과 매칭하고, 이들의 활동을 보조금의 일부로 인정하거나 ‘기획 매칭비용’을 별도 편성해주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단순한 자원봉사 연결이 아니라, 축제를 ‘함께 설계하고 책임지는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구조다. 이를 통해 축제는 도시와 농촌, 고령자와 청년, 전문가와 주민을 연결하는 복합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셋째, 축제 운영을 둘러싼 안전 및 재난 대응 매뉴얼도 고령화 조건을 고려해 재설계되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재난대응 매뉴얼은 ‘장비, 경로, 전파시스템’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실제로 고령자 중심의 마을에서는 이 매뉴얼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예컨대 대피 지시가 휴대폰 알림이나 QR코드를 통해 이뤄진다면, 그것은 실제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따라서 시각적, 음성적, 인적 안내를 기반으로 한 다층적 재난 알림 시스템, 고령자 맞춤형 이동 경로 설계,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방식 활용 등의 대응 프로토콜이 포함되어야 한다. 제도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조건을 따라가야 한다.

 지역이 늙고, 계절이 흔들릴 때에도, 축제는 가능해야 한다

기후가 불안정하고, 마을은 늙어가며, 계절은 제자리를 잃고 있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축제는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단지 하나의 행사나 이벤트가 가능하냐는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곧 지역이 살아 있을 수 있느냐, 마을이 여전히 서로 연결될 수 있느냐, 공동체가 기후와 함께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축제는 공동체의 감각을 복원하고, 자연의 변화에 대응하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오래된 문화의 형태다. 우리가 그것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단지 행사를 하나 잃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기후와 인간 조건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공공문화의 형식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축제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의 나이와 자연의 리듬을 함께 고려하는 이중 설계, 고령자와 청년이 협업하는 세대 간 기획 구조, 기후정보와 생활감각이 결합된 운영 방식, 그리고 그 모든 실천을 정책이 지지하고 행정이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축제는 스스로 설 수 없다. 지역의 의지, 정책의 구조, 문화의 철학이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마을이 늙는다고 축제를 접지 말자. 계절이 흔들린다고 자연을 탓하지 말자. 대신 우리는 그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의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축제는 바로 그 가능성의 현장이고, 그 가능성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