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에서 축제 안전관리,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축제는 위험하다’는 감각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시대
축제는 본래 기쁨과 환대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먹고, 걷고, 웃고, 그 지역만의 자연과 정서를 함께 나누는 축제는 단지 문화 행사가 아니라, 공동체가 연결되고 확장되는 사회적 리추얼이자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감정적 탈출구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축제의 공간을 점점 더 ‘위험한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30도를 넘는 폭염 속에 아스팔트 광장에서 줄 서 있는 관람객들, 돌발 강풍에 날아간 천막 구조물, 기습 호우로 침수된 무대와 감전 위험이 있는 전선, 야간 열대야와 쏟아지는 미세먼지, 이 모든 요소는 이제 예외가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안전을 논의할 수 없다. 더 이상 “비상시 대피로를 확보하고, 병원 연락체계를 마련하고, 소방서와 협의하면 된다”는 수준의 정형화된 안전계획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진입해 있다. 이제 안전은 단지 사고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구조하고 대피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축제의 기획과 운영 전반에 걸쳐 기후위기를 고려한 시스템적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 상황에서의 축제 안전관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존의 안전관리 체계가 어떤 한계를 드러내는지,
그리고 향후 어떤 구조와 제도가 새롭게 필요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축제를 둘러싼 위험은 더 다양해졌고, 더 자주 반복된다
기후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 축제에서의 안전사고는 대부분 인파 밀집, 시설물 낙하, 음주 관련 사고 등 인간 행위 중심의 통제 가능한 위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다르다. 축제를 위협하는 요소는 인간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기후 환경 자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폭염이다. 여름철 야외 축제의 경우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상황이 반복되며, 몇 시간 동안 햇빛에 노출된 관람객이나 자원봉사자, 고령 인구에게는 생명에 위협이 되는 조건이 된다. 실제로 2022년에는 서울의 한 대형 야외축제에서 단 하루 동안 14명의 관람객이 열사병 증세를 보여 긴급 이송되었고, 일부는 중환자실 치료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폭염 상황이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돌발 강풍, 국지성 호우, 야간 열대야, 지반 침하, 하천 범람, 미세먼지 경보 등도 축제 안전을 위협하는 주요 기후 요인이다. 이러한 기후 리스크는 단순히 참가자 안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행사 전체의 존폐를 결정지을 만큼 구조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제는 여전히 ‘통상적인 사고 대응 매뉴얼’에만 의존한 안전관리 계획을 유지하고 있으며, 기후위기 상황에 특화된 설계는 부재한 경우가 많다.
기존 안전관리 매뉴얼은 기후 리스크를 반영하지 못한다
현재 대다수의 축제는 「다중이용시설 안전관리지침」이나 「대규모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등을 기준으로 운영된다. 이 매뉴얼에는 관람객 밀집 시 행동 요령, 화재 발생 시 대피경로 확보, 구조물 설치 시 안전 점검 등 전통적인 사고 유형에 대한 대응 방안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매뉴얼이 기후재난을 주된 변수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폭염 발생 시 그늘막이나 쿨링존 설치가 명시되어 있다고 해도, 실제로 몇 개의 그늘막이 몇 평방미터를 커버할 수 있는지, 시간당 몇 명이 이용할 수 있는지, 열사병 징후 발견 시 어디로 이송되고 누구와 연결되는지가 구체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더 나아가 폭염이 발생하지 않아도, 그 가능성이 일정 이상일 경우 축제를 유예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강풍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보에서 돌풍 경보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무대나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으면 해체가 어렵다는 이유로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풍속 예보를 축제 일정과 어떻게 연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은 사실상 비어 있다. 이는 단지 안전관리 부서의 책임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후 리스크를 고려한 설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안전관리 체계는 ‘사고 발생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안전은 ‘사고 발생 전의 구조’에서 이미 결정된다.
기후위기 대응형 축제 안전체계,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기후시대의 축제는 안전 설계부터 달라져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후리스크 예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전 대응 설계다. 기상청, 환경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기후 데이터와 지역별 기후취약성 지도를 활용해, 해당 시점에 해당 장소에서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온열, 풍속, 우천, 대기질 등)를 시뮬레이션하고, 그에 따라 무대 설치, 동선 구성, 쿨링존 수요, 대피경로, 인력 배치 등을 사전에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후 변수 발생 시 자동 반응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간당 강우량이 30mm를 넘거나 풍속이 초속 14m를 넘는 순간, 특정 구역은 자동 폐쇄되며 관람객 이동 경로가 조정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안내가 제공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자동화된 시스템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으며, 운영 매뉴얼에 통합만 하면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셋째, 축제 관계자와 시민 모두를 위한 기후위기 대응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축제 안전교육은 대부분 응급처치, 소화기 사용법, 대피 훈련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원봉사자, 기획자, 행사 인력 모두가 ‘기후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유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춰야 한다. 기후위기 관련 훈련, 시뮬레이션, 매뉴얼 토론 등이 정례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자체의 안전관리 평가 항목에도 ‘기후 대응력’이 포함되어야 한다.
예산 편성과 성과 평가 시, 단순히 ‘사고 유무’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전 기후 리스크 분석 여부, 기상조건 유연 대응 조항 포함 여부,
대기질·폭염 등 외부 변수에 대한 설계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안전이 문화가 되는 시대, 축제도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이제 안전은 부속적인 조건이 아니다.
안전은 기획 그 자체이며, 운영의 핵심이며,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의 최소 기준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축제를 단지 ‘잘 치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이 함께 살아남는 경험’으로 만든다면,
그 축제는 그 자체로 기후 회복력의 문화적 훈련장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대형사고를 막는 수준을 넘어,
기후재난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축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 시작은 데이터 기반의 감각,
그리고 매뉴얼을 넘는 문화적 상상력이다.
안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이거다.
“이 구조는 위험을 예측했는가?”
“이 기획은 사람을 지키는가?”
그 질문에 당당하게 ‘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축제는 비로소 미래를 말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