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축제는 누구의 일인가? 시민 주체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
축제의 무게중심은 바뀌고 있다 — 무대 위에서 관객석으로
오랫동안 축제는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나뉘는 구조였다. 기획자는 무대를 설계하고, 예술가는 공연하고, 시민은 관람객으로 그 장면을 소비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역축제는 그와 같은 삼각구도를 유지한 채 매해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물론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나 체험 공간이 늘어나며 ‘참여’라는 이름의 장치는 다양해졌지만, 그 참여의 방식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정해진 체험부스에 줄을 서고, 스탬프를 찍고,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수준의 개입은 ‘참여’라기보다는 오히려 ‘관리되는 참여’에 가깝다.
하지만 기후위기라는 전환의 시대 앞에서, 축제의 무게중심은 서서히 바뀌고 있다. 더 이상 축제는 일방적으로 구성된 콘텐츠를 제공하고, 시민이 그 콘텐츠를 감상하고 소비하는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자연재해, 기후재난, 생태적 붕괴가 현실화된 지금, 축제는 지역 사회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시민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축제를 함께 설계하고 책임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를 ‘누가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축제에 누구의 목소리가 들어 있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기획과 실행의 중심을 시민 주체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위기 시대의 축제는 시민의 생존 감각을 일깨우는 구조여야 한다
기후위기는 정부나 전문가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폭염에 대응하는 것도,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도 결국은 개별 시민의 삶의 방식과 감수성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 감수성은 단순히 정보 제공이나 캠페인으로는 쉽게 자라지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 ‘몸으로 느낀 것’, ‘공동체 안에서 체험한 것’, ‘서로의 말과 감정을 나눈 순간’을 통해 변화한다. 축제는 그 모든 요소가 집약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공공의 문화공간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누군가 만들어준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방식으로는 어렵다. 시민이 축제의 기획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실험하고, 다른 시민들과 그 경험을 나눌 때, 비로소 축제는 기후위기 대응의 문화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을단위에서 기후위기 대응형 축제를 기획하며 ‘올여름 폭염에 우리는 어떤 음영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축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우리 마을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를 논의한다면, 그 논의 과정 자체가 지역의 기후회복력을 키우는 실천형 학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축제는 단지 놀고 즐기는 행사가 아니라,
시민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함께 실험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때 축제는 삶의 일부가 되고,
기후위기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생존의 감각을 키워줄 수 있다.
소비자가 아닌 설계자로: 축제의 거버넌스를 바꿔야 한다
지역축제를 만드는 구조는 여전히 탑다운(top-down) 방식이다. 기획사는 용역을 받아 예산을 집행하고, 지자체는 행정 절차를 관리하며, 시민은 그 구조 안에서 ‘관람객’으로 위치 지워진다. 물론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나 만족도 조사가 있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축제가 끝난 뒤 이뤄지는 사후 절차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이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시민 주체의 축제 거버넌스란, 시민이 축제의 시작 단계부터 함께 기획에 참여하고, 의사결정에 관여하며, 자원을 책임 있게 운영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예컨대 서울 성북구에서는 ‘기후시민회의’를 통해 시민이 직접 기후 관련 이슈를 발굴하고, 그것을 문화행사와 축제로 구체화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시민참여형 거버넌스는 전문가나 행정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지역의 실질적 문제와 감정, 감각을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시민이 축제를 ‘사용자’가 아닌 ‘설계자’로 인식하는 순간,
그 축제는 단지 몇 시간의 체험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변화 촉진자가 된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지역의 생활 공간 안에서, 문화의 언어로 풀어내는 힘을 가진다.
축제의 지속가능성은 ‘시민이 계속 만들고 싶은 축제인가’에 달려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축제를 계속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하지만 더 정확한 질문은 ‘누가 계속하고 싶은 축제인가’이다. 많은 축제가 1~2회 진행 후 중단되는 이유는 예산 부족이나 날씨 문제도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약하기 때문이다. 지역이 스스로 그 축제를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행정의 지원이 끊기거나 외부 관광객이 줄어드는 순간 축제는 소멸한다.
반면 시민이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축제는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지역의 로컬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고,
지역 문제를 콘텐츠로 삼고,
지역 공동체가 운영 인력을 구성하며,
그 결과가 지역의 교육, 경제, 생태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축제는 더 이상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문화의 핵심 인프라가 된다.
예를 들어 충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는, 마을 청년들이 직접 기후위기 대응을 주제로 한 걷기 축제를 기획하고, 그 경로에 있는 폐가를 정리해 전시공간으로 만들고, 지역 어르신의 기후 변화 구술 영상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 축제는 대규모 자본이나 외부 관광객 없이도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3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행정은 이들의 실천을 기반으로 예산과 정책을 보완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축제란 결국,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은 축제다.
그 마음은 외부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시민이 직접 설계하고 함께 경험하고, 그 의미를 몸으로 이해할 때 생긴다.
축제의 주체가 바뀌어야 미래가 바뀐다
기후위기 시대, 축제는 더 이상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축제는 지역이 살아남기 위한 문화적 실험실이고,
시민이 기후에 대응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감정의 장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설계하는 주체는 이제 기획사나 행정만이 아니라,
시민 자신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축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만들고 있으며, 누가 책임지고, 누가 이어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축제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버티기 어렵다.
반대로, 시민이 기획부터 실행까지 함께하는 축제는
변화에 적응할 뿐 아니라,
그 지역을 진짜로 바꿔낸다.
기획자는 이제 시민의 손에 무대의 열쇠를 넘겨야 한다.
시민은 더 이상 관람객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문화의 주체다.
그리고 그 전환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도 축제가 존재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