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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축제의 변화

지속가능한 축제를 위한 공공지원금 구조,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기후위기 시대, 돈의 흐름은 문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문화예산은 단지 행정적인 숫자나 기획의 배경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곧 지역 문화의 방향을 결정짓는 구조이며, 특히 축제처럼 대부분의 사업비가 공공 보조금에 의존하는 경우에는 예산이 곧 기획의 범위, 내용, 성격까지 정하게 된다.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은 창의성과 의지로 움직이지만, 그 창의성과 의지가 작동할 수 있는 토대는 결국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다. 그래서 어떤 축제는 특정 시점에 특정 규모로만 반복되고, 어떤 축제는 기후위기 대응, 자원순환, 사회적 감수성 같은 중요한 이슈를 담고 있어도 현실의 조건 앞에서 사라지거나 축소된다. 그리고 그 예산의 흐름은 대부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 구조에 따라 움직인다. 문제는, 지금 이 공공지원금 체계가 여전히 ‘관람객 수’나 ‘홍보성과’ 같은 양적인 성과지표를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규모가 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예산은 올라가고, 작고 지속가능한 실험을 시도하는 축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배제되기 쉽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문화 전환은 지연되고, 기획자들은 진짜 필요한 실험보다 숫자를 채우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말하면서, 예산 구조는 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가?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에 진정한 생존력을 갖춘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조금 체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공공지원금

 현행 축제 보조금 구조는 ‘기후위기 시대’에 부적합하다

현재의 축제 보조금 체계는 기획의 질보다 규모 중심의 양적 평가에 방점을 둔다. 심사 항목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축제가 얼마나 많은 인원을 유치할 수 있는지, 지역경제에 어떤 직접적인 소비 효과를 가져오는지, 몇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얼마나 많은 언론 노출과 SNS 언급을 유도했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 지역경제 활성화가 축제의 핵심 목표였던 시절에는 일정 부분 합리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기후위기로 인해 대규모 이동과 에너지 소비가 사회적 비용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 자체가 오히려 탄소 배출과 폐기물, 안전 리스크를 키우는 요소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현행 보조금 시스템은 이러한 전환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친환경 실천을 도입하거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축제를 설계하거나, 지역 자원을 순환시키려는 시도가 오히려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비효율적’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이처럼 예산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축제는 오히려 행정적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지원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문화 생태계를 지지하고 있는가, 어떤 실천에 힘을 실어주는가라는 근본적인 윤리와 정책의 방향성 문제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의 보조금 구조는 그 자체가 기획을 가로막는 벽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축제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기후위기 대응형 예산구조,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까?

기후위기 시대의 보조금 구조는 단지 환경 항목을 하나 추가하는 수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축제라는 문화 구조 전체의 작동 방식에 개입할 수 있는 정책적 재설계여야 한다. 첫째로, 탄소 감축을 실질적으로 수행한 축제에 대해서는 예산 차등 배정 또는 인센티브를 도입해야 한다. 단지 “친환경을 고려했다”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디젤 발전기 대신 재생에너지를 사용했는지, 다회용기 시스템을 운영했는지, 프로그램 설계와 운영 동선에서 자원 절약과 탄소저감을 실현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실천 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하여 가점을 주거나 예산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는, 규모 중심 평가를 탈피하고 작지만 지역성과 지속가능성이 높은 축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는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하지 못하는 축제는 ‘경제효과가 낮다’는 이유로 탈락하거나 삭감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는 참여 시민의 자율성, 지역 자원의 순환성, 생태적 설계 구조 등을 평가 요소에 반영해 ‘질 중심 보조금 구조’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는 사업계획서 양식 개정이다. 이제 축제 기획서는 기후 리스크 분석, 폐기물 감축 계획, 에너지 소비 관리 방안, 기후심리 회복 요소 등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표준양식이 개정되어야 하며, 해당 항목 미기재 시 감점이나 탈락 사유로 반영하는 제도적 강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사후 정산 구조다. 축제 종료 후에는 단순한 영수증 정리가 아니라, 기후대응 결과 지표, 탄소 감축 수치, 폐기물 처리량 등의 지속가능성 성과 분석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 결과가 다음 회차 지원 여부와 규모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새로운 기준이 새로운 축제를 만든다

정책은 문화를 만든다. 그리고 정책 중에서도 예산은 가장 강력한 언어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산이 많은 축제, 규모가 큰 축제를 “성공한 축제”로 간주해왔고, 그 결과 사람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한 콘텐츠 설계, 언론 노출을 늘리기 위한 포장, 관광 중심의 피상적 소비 구조가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반복은 기후위기 앞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축제가 지역에서 어떤 전환을 만들어냈는가, 어떤 실험을 통해 어떤 가능성을 보여줬는가, 사람들의 감각을 어떻게 바꾸고, 자원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행정이 이러한 기준을 만들고 예산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하면, 기획자들은 더 이상 숫자에 매달리지 않고 진짜 기후 대응형 콘텐츠를 시도할 수 있으며, 지역 주민들도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닌 전환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보조금 구조는 하나의 축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전체 문화 생태계에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기획자와 행정이 서로를 단순한 위·수탁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실험하는 공동체로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지원금은 돈이 아니라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어떤 실천에 힘을 싣느냐에 따라 우리의 문화 방향은 달라진다.

 예산 구조를 바꾸면, 지역의 문화도 바뀐다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든다는 것은 단지 환경을 의식하는 콘텐츠를 몇 개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부터 다시 재편하는 것이다. 그 조건의 핵심은 바로 돈의 흐름, 즉 공공지원금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 앞에서 문화정책이 책임질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이며도 구조적인 개입은, 어떤 기획에 예산을 주고 어떤 실천에 지원을 집중하느냐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산은 단지 수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작업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면, 그 진심은 결국 어디에 예산을 배분하는가에 담겨 있어야 한다. 작지만 환경적으로 설계된 축제, 실험적이지만 지역 회복력에 기여하는 기획, 경제효율은 낮지만 기후 감수성을 키우는 공동체의 활동이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문화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는 기획자와 행정, 정책과 현장이 같은 언어를 써야 할 때다. 기획자는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화 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까?” 그리고 행정은 이렇게 답해야 한다. “우리는 그 생태계를 위해, 예산의 구조를 바꾸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그 지역은 진정한 전환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